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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장군, 한 이름에 담긴 서로 다른 이야기: 술병에서 거름통까지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5-09-12
조회수
22

장군, 한 이름에 담긴 서로 다른 이야기: 술병에서 거름통까지

명칭

분청사기철화연당초문장군

국적

한국

시대

15~16세기

재질

도자기

크기

가로 27, 세로 19.6cm

소장위치

인천시립박물관 고미술실



<분청사기 철화 삼엽무늬 장군, 계룡산에서 온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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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립박물관 2층 고미술실, 전시된 미술품들 사이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도자기 하나가 있습니다. 가로로 길쭉한 원통형 몸체 위에는 둥글고 납작한 주둥이가 달려 있고, 바닥에는 안정감 있게 굽이 받치고 있습니다. 하얗게 칠한 표면 위로 세 개의 둥근 잎이 달린 흑갈색 삼엽문(三葉文)이 대담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백색과 흑갈색의 강렬한 대비, 그리고 거침없는 문양 표현이 단연 돋보입니다. ‘분청사기 철화 삼엽무늬 장군’이라 불리는 이 유물은 철화기법으로 만든 분청사기의 대표적인 예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학봉리 가마터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계룡산 분청사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장군, 제사부터 일상까지 담은 그릇>
 그렇다면 ‘장군(扁缶)’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그릇은 언제부터,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요? 장군은 과거에 장본(獐本), 장본(長本), 장분(長盆)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제작된 시기는 분청사기가 유행하던 조선 15세기에서 16세기 무렵입니다. 오늘날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얗게 분장된 장군이 이 시기에 주로 만들어진 것이죠. 
 장군의 재질과 용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정조10년(1786년)의 『일성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크고 작은 사향(祀享) 때, 제주(祭酒)를 담는 그릇은 도기장군(陶長本)으로 진배하는데, 
도기에 술을 담으면 혹 샐 우려가 있고 정결한 아름다움이 부족합니다. 
이후에는 제주(祭酒)를 봉진할 때 자기장군(磁長本)으로 진배하도록 하소서.”  
                                             『일성록』 정조 10년(1786년) 1월 22일자

 이 기록에 따르면, 제사 때 술을 담는 그릇으로 전통적으로 도기장군이 사용되었으나, 술이 샐 우려와 정결한 아름다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기장군으로 바꾸자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장군은 참기름(眞油)을 저장하거나, 왕이 사용하던 강심수(江心水)를 담았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즉, 장군은 술이나 기름, 물 등 여러 액체를 담는 데 사용되었으며, 일상생활은 물론 제사와 의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릇이었습니다.

<목재 장군, 농사 현장의 일꾼>
목장군, 한국, 일제강점기, 목재, 72x41cm, 인천시립박물관 소장

 또한, 조선시대에는 목재로 만든 장군도 있었습니다. 시립박물관에 소장된 목재장군을 살펴보자면, 도기나 자기 장군보다 몸체가 3배 이상 크고, 성인 한 사람이 들기에도 어려운 크기입니다. 나무 판자로 몸체를 만들고, 액체가 새지 않도록 틈새는 나뭇조각으로 메운 뒤, 대나무 끈으로 단단하게 돌려 매어 고정했습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자기나 도기장군과 유사하지만, 재질과 크기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목재 장군에도 술이나 물 같은 음식을 담았을까요? 아닙니다. 목재 장군은 주로 농사에 필요한 거름이나 분뇨를 담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장군은 좌우 너비가 길고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지게에 뉘어 지기 좋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 입구가 좁아 운반 중 내용물이 쉽게 새지 않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깨지기 쉬운 자기와 달리, 목재는 가볍고 튼튼하여 거친 농사일에 더 적합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도에 따라, 음식을 담는 장군과 구분해 ‘똥장군’, ‘오줌장군’이라 불렀습니다. 

<시간을 넘어 이어지는 장군의 이야기>

출처: 손이야기(SONSTORY)

 오늘날에도 장군은 여전히 제작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액체나 거름을 담기 위한 실용적인 생활용기로, 넉넉한 용량과 크기를 갖춘 필수품이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그 용도와 의미가 변화했습니다. 도기나 자기로 만든 장군은 장식용으로 재해석되어 꽃병이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되고, 거름을 담던 장군은 농경 기술의 발달로 점차 자취를 감추어 이제는 농촌에서도 보기 어려운 농기구가 되었습니다. 비록 재질과 쓰임은 달랐지만, 자기 장군, 도기 장군, 목재 장군 모두 ‘장군’이라는 이름 아래 생활과 의례, 농업 현장에서 다양하게 사용된 그릇이자 도구였습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형태와 역할은 변했지만, 사람들의 일상과 전통 속에서 함께 호흡해 온 장군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하나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글_김소영(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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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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