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칭 | 평양성도 |
국적 | 대한민국 |
시대 | 18세기 후반 |
재질 | 비단에 채색 |
크기 | 각 폭 146.5×4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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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위치 | 송암미술관 |
지정 | 보물 제1997호 |
여러분은 ‘조선 시대 최고의 도시’하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 한양을 떠올리실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한양 못지않은 ‘핫 플레이스’가 또 있었습니다. 바로 고조선과 고구려의 기상이 서린 도시, 평양입니다. 송암미술관 2층 전시실에는 보물로 지정된 <평양성도> 병풍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병풍을 처음 마주하면 압도적인 크기와 세밀한 표현에 절로 탄성이 나오는데요. 마치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이 그림은 우리를 250년 전 평양의 한복판으로 안내하는 타임머신과 같습니다.
<왜 평양이었을까>
평양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옛 수도였고, 고려시대에는 ‘서경’으로 불린 도시였습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북방을 지키는 국방의 요충지이자 중국과의 외교가 이루어지는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평양은 상업과 무역이 활발하여 18세기에 이르면 한양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성장합니다. 이처럼 평양은 정치, 경제가 모두 집중된 공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역사적 상징성까지 갖춘 이 도시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녔고, 자연스럽게 그림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정교한 표현으로 완성된 병풍 속 도시>
이제 그림 속 평양으로 들어가 볼까요? 여덟 폭의 화면에는 대동강이 평양을 휘돌아 흐르고, 견고한 평양성곽 안에는 관청과 가옥들이 파노라마처럼 빽빽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옥의 지붕 하나하나, 성벽의 돌 하나까지 아주 정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주요 건물들에는 명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지도의 역할도 함께 합니다. 여기에 맑고 은은한 대동강 물결과 녹색의 산들이 어우러져, 정보 전달이라는 지도의 기능과 감상용 회화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표현되었는데요. 실제로는 한눈에 볼 수 없는 넓은 공간을 한 화면에 담기 위해 ‘부감 시점’과 ‘사선 투시’를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마치 새가 되어 도시 위를 날며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처럼 장대한 평양의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낸 표현력은 숙련된 화가의 솜씨를 보여주며, 당시 궁중화원이 제작했을 가능성도 짐작하게 합니다.
<그림 속에 담긴 평양의 자부심, ‘기자정전’>
이 그림에서 유독 눈에 띄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격자무늬로 정돈된 밭인‘기자정전(箕子井田)’입니다. 이 공간은 8폭 화면 중 3폭을 차지할 만큼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옛 중국 은나라의 성인(聖人)인 기자가 고조선으로 건너와 사람들에게 문명과 질서를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땅을 일정하게 나누어 함께 경작하는 이상적인 제도인 ‘정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평양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문명이 시작된 곳이자 이상적인 질서가 구현된 도시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그린 그림에는 기자정전이 아주 크고 중요하게 묘사되곤 합니다. 즉, 이 그림은 실제 도시의 모습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역사관과 가치관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그린 그림을‘기성도(箕城圖)’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평양성도 중 가장 ‘큰 형님’인 이유>
현재 다수의 평양성도가 전해지고 있지만, 송암미술관 소장 작품이 보물로 지정된 결정적인 이유는 ‘희소성’과 ‘시기’에 있습니다. 19세기에 제작된 다른 평양성도는 구경꾼이나 행렬 같은 인물 묘사가 많고 화려한 채색을 자랑하지만, 이 작품은 인물 표현을 생략하고, 정제되고 단정한 화법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또한 18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90년에 다시 지어진 애련당(愛蓮堂)과 장대(將臺)가 옛 모습대로 그려져 있어 제작 시기를 18세기 후반까지 올려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이 작품은 현존하는 평양성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특징을 간직한 작품으로, 이후 제작된 평양성도의 기준이 되는 ‘원형’으로 평가됩니다.
1804년 화재로 소실된 애련당과 장대
송암미술관의 평양성도는 단순히 옛 도시를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평양이라는 공간의 구조와 풍경,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이 품었던 역사관과 이상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병풍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18세기 평양을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그림은 과거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대 사람들이 도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했는지를 전해주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글_이현아(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