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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 소개

120년 전, 미국인이 찾던 조선 우표

담당부서
유물관리부 (032-440-6768)
작성일
2026-08-14
조회수
19

120년 전, 미국인이 찾던 조선 우표

명칭

세창발신 편지 및 봉피

국적

대한민국

시대

1904, 1907년

재질

종이

소장위치

인천시립박물관 소장

인천도시역사관 전


 

인천도시역사관에는 두 통의 세창양행 편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120년의 시간을 건너온 이 편지들은 ‘우표’를 매개로 인천과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물포에서 온 편지>

 1904년 12월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 살고 있는 레스터 카우프만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는 인천의 독일계 무역상사 세창양행에서 제물포 우체국을 통해 보낸 것이었습니다. 제물포에서 머나먼 미국에까지 날아간 이 편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편지에는 카우프만이 요청한 한국의 우표가 동봉돼 있었습니다. 동봉된 우표의 목록을 살펴보면 당시 한국 우정郵政의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04년 레스터 카우프만이 요청한 한국 우표에 대한 세창양행의 답신(부분 확대)



 우표 목록을 살펴보면 ‘5, 10, 25, 50, 100 Moon 1885’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 1세트를 요청한 것입니다. 문위우표는 조선이 일본에 인쇄를 의뢰하여 1884년 10월에 5문과 10문 우표부터 발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갑신정변의 여파로 우편 업무가 중단되면서 나머지 우표는 발행되지 못했습니다. 발행되지 못하고 남겨진 우표들은 세창양행에서 인수하였습니다.

 ‘5, 10, 25, 50 Poon 1895’는 우리나라에서 1895년 우편 업무를 재개하면서 발행한 태극우표 1세트를 요청한 것입니다. 여기서 문文, Moon과 푼分, Poon은 같은 말로 엽전을 세는 단위로 씁니다. 


 ‘3 chuen Jubilee stamp’는 연도가 나와 있지 않지만, 3전chuen이라는 액면가와 주빌리jubilee(기념일)라는 단어에서 어극御極 40년 기념우표를 요청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이 우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우표입니다.


 ‘2 Ri, 2,5,6,50 chuen, 1 & 2 $’는 추측할 수 있는 우표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창양행에서 1904년 당시 우체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우표(‘*’로 표시)를 보내주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시기에 발행된 독수리 우표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창양행의 우표 판매 중개>

 카우프만이 요청한 우표에 대해 세창양행은 총금액이 7.2달러이지만 반값인 금화 3.6달러(360센트)를 청구하였습니다. 카우프만의 직업은 알 수 없지만, 노조에 속한 미국 노동자의 1900년 평균 시급인 34센트를 기준으로 한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을 것입니다.  세창양행은 카우프만에게 송금을 먼저 요구하지 않고 요청한 우표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판매 금액도 반값으로 청구하면서 우체국(당시에는 우체사)에서 구할 수 없는 우표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정성스러운 고객 응대가 알려져 세계의 우표 수집가들은 카우프만처럼 세창양행으로 한국우표 구매를 요청했을 것입니다. 

어극 40년 기념우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독수리우표 중 2원(2$) 우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야기의 안타까운 마무리> 

 편지로 오간 세창양행과 카우프만과의 거래는 잘 마무리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카우프만이 다시 세창양행으로 한국 우표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세창양행의 답신은 1907년 3월 어느 날 카우프만 앞으로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온 답신에는 카우프만이 기대했던 한국우표는 없었고, 짤막한 답변을 적은 편지지만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1906년) 12월 28일 자 귀하의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우표에 관한 귀하의 요청을 들어드릴 수 없음을 

알려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한국의 우체국이 문을 닫은 지 벌써 거의 2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창양행이 한국우표를 보낼 수 없었던 이유는 일본의 강요로 1905년 4월 1일 ‘한일통신기관협정서’가 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협정서를 통해 일본은 한국 정부로부터 위탁받았다는 명목으로 한국의 통신기관을 장악하였고, 우표 발행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후에도 세창양행과 카우프만이 편지를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두 통의 편지는 제물포에서 미국의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120년 전 우표 수집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글_송완식(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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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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