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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전시

2011년 특별전시

담당부서
한국이민사박물관 (032-440-4706)
작성일
2011-06-10
조회수
3211
제목: 동방을 밝힌 등불,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홀
기간: 2011. 6. 10. ~ 8. 7.
전시 구성
- 1부. 이상향, 명동촌의 형성과 정착
- 2부. 명동의 5현
- 3부. 명동촌의 생활문화
- 4부. 명동학교
- 5부. 명동교회
- 6부. 명동촌 사람들
- 7부. 북간도의 항일독립운동
- 에필로그
                                             

명동촌은 1899년에 김약연을 비롯한 다섯 가문이 두만강을 넘어 북간도로 이주하여 세운 한인마을이다. ‘동쪽(한반도)을 밝힌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국 광복을 밝히는 등불을 자처하며 명동학교를 건립하여 민족주의교육 실시 및 항일운동가들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이번 특별전은 지금까지 발굴된 초기 한인이주 및 명동촌 형성과정 관련 자료뿐 아니라 최근의 명동촌 모습과, 명동학교 재건 모습 등을 전시하여 명동촌 한인선조들의 열정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최하였다.
 
■ 1부. 이상향, 명동촌의 형성과 정착
 
1800년대, 두만강 변의 함경북도 농민들은 산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땅으로 인해 농사 짓기가 힘들자 두만강 저편의 비옥한 땅인 간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899년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김약연(金躍淵)을 비롯해 총 5가문 142명 모두가 평등한 이상적 공동체 마을을 건설하려는 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넜다.
이들은 장재촌 지역에 자리를 잡고 황무지를 개척하여 가옥을 건설하고 서당을 세웠다. 이후 김약연은 장재촌, 윤하연과 문병규는 용암동, 남위언은 중영촌, 김하규는 대룡동에 각각 정착하여 마을을 발전시켜 나갔다.
 
■ 2부. 명동의 5현
 
명동촌을 일군 다섯 가문의 지도자(김약연, 김하규, 남도천, 문병규, 윤하현)들은 명동의 5현(五賢)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그들이 떠난 함경북도 오룡천(五龍川)의 5현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다.
 
■ 3부. 명동촌의 생활문화
 
명동촌 한인들의 생활문화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독교를 받아들여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서구식 신문물을 접해 서구문화가 일찍이 전파되었다.
명동촌 한인들의 생활문화 중 가장 특징적은 것은 가옥이다. 명동촌의 가옥은 전형적인 함경도식의 가옥양식으로 양통집이라고 하는데 주목한 점은 명동촌 가옥들의 기와 및 막새에서 태극기와 무궁화, 십자가 등의 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으로 당시 명동촌 한인들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다.
 
■ 4부. 명동학교
 
김약연 등은 한국 최초의 신학문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의 정신을 계승하여 명동촌에 있는 여러 사숙들을 통합해 1908년 ‘명동서숙(明東書塾)’을 설립하였다. 명동서숙은 1909년 이름을 명동학교(明東學校)로 바꾸었고 반일민족교육 인재양성의 요람지로 알려졌다.

■ 5부. 명동교회
 
명동학교가 발전함에 따라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교사의 확보가 시급하자 김약연은 실력과 애국심을 갖춘 우수한 교사를 채용해 민족의식을 풍부히 심어주고자 정재면에게 명동학교 교직원이 되어 줄 것을 제의한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명동교회는 1909년 창립되어 1920년까지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교회라 할 수 있다.
 
■ 6부. 명동촌 사람들
 
명동촌에서 태어났거나 유학 온 사람들(나운규, 문익환, 송몽규, 윤동주)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송몽규와 윤동주 묘소의 묘비석 탁본이 전시되었다.
 
■ 7부. 북간도의 항일독립운동
 
북간도에서는 교육과 종교 각 방면에 걸쳐 민족운동이 활발치 추진되었다. 민족교육 학교로는 1906년 서전서숙의 설립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후 근대교육과 함께 항일의식을 키워주는 여러 민족주의 학교가 설립되어 항일운동의 정신적 동력이 되었다.
 
■ 에필로그

현재 명동촌과 북간도 전역에는 당시 명동촌에서의 삶을 생생히 기억하는 한인들이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후손들은 명동학교와 교회, 윤동주 생강 등의 명동촌에 있었던 유서 깊은 자료들을 재건, 복원하여 그 역사를 되살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꿈을 안고 강을 건넜지만 오랜 세월동안 이방인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우리 한인들을 이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타국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조국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삶과 개척자적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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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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