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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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기획특별전 남미의 한인들
-2021 기획특별전-남미의 한인들대한민국 지구 반대편, 비행기를 타고 24시간 이상을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 남미에는 현재에도 8만 여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곳으로 여겨집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는 이번 특별전을 통해 남미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한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 전시기간 : 2021.7.13.(화) ~ 2021.12.26.(일) -특별전시가 연장되었습니다.* 전시장소 : 한국이민사박물관 전시동 지하1층 기획전시실* 전시내용 : 남미 한인 이민역사 * 전시구성- 1부. 남미와의 첫 만남- 2부. 도전과 정착- 3부. 한인들의 활동- 4부. 남미 한인의 현재
- 작성일
- 2022-01-14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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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특별전시
-2020 기획특별전-○ 제목 :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장소 : 한국이민사박물관 지하 1층 기획전시실○ 기간 : 2020.09.29. ~ 2020.12.13.독립운동가의 아들군인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한국에서 최고훈장을 받은 전쟁영웅미군 전투교본을 다시 쓰게 한 작전장교한반도 휴전선 60km 북상의 주역아동ㆍ여성ㆍ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소수 아시아계 이민자 사회의 개척자위안부 결의안의 숨은 공로자故김영옥 선생님을 이르는 말입니다. 2020년 한국이민사박물관 특별전은 미주한인 2세로 태어나 세계2차대전의 영웅이자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퇴역 이후에는 사회봉사와 정의를 위하여 평생을 살아온 “아름다운 영웅”김영옥 선생님의 삶을 되새겨 보는 전시입니다. ◆ 전시구성1부. 한인 2세로 태어나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소수계 아시아인으로 차별 속에 성장한 김영옥 선생님의 성장과정과 가족 이야기2부. 군인으로서의 삶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의 영웅적 활약상과 그의 군생활 물품들3부. 사회운동가로서의 삶퇴역 이후, 소수계 아시아인들을 비롯하여, 여성ㆍ아동ㆍ청소년ㆍ노인ㆍ빈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 그리고 정의를 위한 노력들4부. 그가 남긴 것故김영옥 선생님이 남긴 것들. 훈장과 감사장 그리고 그가 남긴 말들
- 작성일
- 2020-10-06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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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특별전시
2019기획특별전 ○ 제목:에네켄에 담은 염원, 꼬레아노의 꿈 ○ 장소 : 한국이민사박물관 지하 1층 기획전시실 ○ 기간: 2019. 10. 25. ~ 2020. 2.16.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생소한 멕시코-쿠바 한인에 이민과 독립운동에 관한 전시입니다. 1905년 단 한차례 멕시코로 이주한 1,000여 명의 한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기울어 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머나먼 이국 땅 멕시코로 노동이민을 떠났습니다. 부푼 꿈으로 시작된 생활이지만 에네켄 농장에서의 삶은 노예와 같아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돌아갈 조국은 사라졌습니다.본인들의 힘겨운 삶속에서도 멕시코의 한인들은 독립운동을염원하였습니다. 일부는 쿠바로 이주하여서도 그 꿈을 이어나갔습니다. 에네켄에 담은 염원, 꼬레아노의 꿈에서는 비록 소수지만 가장 먼 곳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던 멕시코-쿠바 한인들의 삶과 염원을 기억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 전시구성 1부. 바다 끝 희망을 찾아 멕시코 이민과정과 에네켄 농장에서의 생활, 그리고 정착과정 2부. 다시 바다를 건너 쿠바로의 재이주와 정착과정 3부. 조국 독립의 꿈 멕시코 쿠바의 독립운동 그리고 독립운동가
- 작성일
- 2019-10-25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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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특별전시
2018 기획특별전 ○ 제목:기억할게 우토로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지하 1층 기획전시실 ○ 기간: 2018. 12. 14. ~ 2019. 4.14. 이번 전시는 1943년 일본군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모인 조선인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해방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모여 살게 된 우토로 마을에 관한 전시입니다. 전시를 통해 한국의 무관심과 일본의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삶의 터를 지키기 위해 견뎌온 우토로의 70여년 역사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이와 함께 시영주택 입주와 평화기념관 건립 추진으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는 그 과정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전시구성 1부. 우토로의 형성 교토비행장 건설에서부터 형성된 우토로 마을로의 이주배경과 생활환경 2부. 끝나지 않는 전쟁 차별과 억압 속에 40년을 지내다 결국 마을이 강제철거의 위기에 빠지며 투쟁해온 우토로 마을의 역사 3부. 함께하는 사람들 우토로를 지키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그 결과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우토로의 모습 일제강점기 교토비행장 건설을 위해모인 조선인들이 모여살던 함바집 우토로를 지키기 위한 투쟁 우토로 주민들들의야끼니꾸 마을 축제 우토로 살리기 희망모금 캠페인
- 작성일
- 2018-12-17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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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특별전시
2017기획특별전 ○ 제목: 새롭게 보는 하와이 韓人 독립운동 자료전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실 ○ 기간: 2017. 9. 5. ~ 12. 3. 하와이는 하와이, 마우이, 오아후 등 8개의 주요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평양에 위치한 미국의 50번째 주이다. 본래는 폴리네시아인들의 왕국이었으나 사탕수수 상인과 군대를 앞세운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구한말 생활고를 피해, 또는 신앙의 자유와 새로운 운명을 찾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의 어려운 삶 속에서도 자신이 번 돈을 아낌없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바쳤다. 하와이는 한국 독립운동의 또 하나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하와이 한인의 독립운동을 새롭게 살펴보는 특별전을 기획하였다. 1부에서는 박물관 소장자료를 중심으로 하와이 한인의 독립운동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고, 2부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열망했던 하와이 한인들의 삶을 다루었다. 3부에서는 광복 이후 하와이 동포들의 한국방문과 지원, 인천과의 교류 관계를 다루었다. With eight major islands including Hawaii, Maui and Oahu, Hawaii is the 50th state of the U.S. located in the Pacific Ocean. Originally a Polynesian kingdom, the islands became an American colony with the entry of U.S. sugarcane merchants and troops. To seek a better life or fate or enjoy freedom of religion, Koreans began migrating to Hawaii from the early 20th century and worked on sugarcane farms there. Though life on such farms was tough, Koreans in Hawaii sent the money they earned to help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This is how Hawaii became another hub of Koreas pro-independence activities. Celebrating the centennial ann
- 작성일
- 2017-09-05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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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특별전시
○ 제목: 또 다른 이민, 해외 입양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실 ○ 기간: 2016. 8. 23. ~11. 27. ○ 전시 내용: 해외 입양을 한민족 이민 역사에 포함하여 20여 만 명의 해외 입양 역사와 현황을 조명 ○ 전시 자료 협조 -국내 : 서재송, 국가기록원,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대한사회복지회, 명성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해성보육원, 홀트아동복지회 -국외 : 김금숙(Jenifer Jacobus), 김명희(Lisa Kim), 김성히(Sunni Lee Boswell) 김수자(Lisa Futrell-Williams), 임예은(Jill Mcduffee Wade), 쟈넷 셧(Janet Shutt), 황계숙(Mele Kramer), MeKorea Loaner to the exhibition -Korea : Suh Jai Song(Pio), Holt Children’s Services Inc, International Korean Adoptee Service Inc, Korea Social Service Inc, Myungsung Welfare Foundation, National Archives of Korea, Social Welfare Society Inc, Star of the Sea Children’s Home -Overseas : Janet Shutt, Jenifer Jacobus(Kim Keum Sook), Jill Mcduffee Wade(Lim Ye Eun), Lisa Futrell-Williams(Kim Soo Ja), Lisa Kim(Kim Myung Hee), Mele Kramer(Whang Kei Sook), Sunni Lee Boswell(Kim Sung Hi), MeKorea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는 개관 8주년 특별전으로 또 다른 이민, 해외 입양전을 마련하였다. 이번 전시는 20여 만 명에 달하는 해외 입양 60여 년을 되돌아보며 한민족 이민사의 범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해외 입양은 전쟁으로 생긴 10여 만 명 고아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후 반세기 넘게 다양한 요인들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해외 입양이 성행한 배경에는 전쟁, 혼혈, 남아 선호, 미혼모, 혈통 중시 풍토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이 혼재해 있어 단편적 관점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복합적 주제이기도 하다. 현재는 국내 입양 촉진으로 정책이 전환되어 해외 입양인의 수가 많이 감소하였지만, 1948년부터 2004년까지 전 세
- 작성일
- 2016-08-23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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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특별전시
○ 제목: 사할린 한인의 망향가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실 ○ 기간: 2015. 9. 21. ~12. 31. ○ 전시 구성 - 1부. 이산의 시작, 강제동원 - 2부. 민족 정체성을 지켜온 한인들 - 3부. 귀국을 위한 노력 - 4부. 영주귀국, 그리고 또 다른 이산 - 5부. 친구들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동원 되어 사할린에 배치되었던 사람들과 후손들을 사할린 한인Сахалинсий Корееец라 부릅니다. 대부분이 남한출신인 한인들은 해방을 맞았으나 일본, 소련은 물론 조국의 무관심 속에 타향에 방치되었습니다. 귀국의 꿈을 위해 소련국적을 거부하고 무국적자로 남은 한인들은 우리 민족 특유의 성실함과 교육열로 차별과 멸시를 극복하면서 사할린의 두 번째 민족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사할린 한인의 이주역사는 반복되는 이산이 특징입니다. 강제동원에 의해 고향의 가족들과 첫 번째 이산을 했고, 패망을 목전에 둔 일제가 큐슈지방으로 한인 3,000여명을 전환 배치함으로써 사할린의 가족과 두 번째 이산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1945년 이전 출생자와 배우자에 한정된 영주귀국으로 4,300여명의 1세대들의 가족과 헤어져 세 번째 이산을 겪고 있습니다. 2015년은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이한 지 70주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지 25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또한 한일간 협의가 없으면 일본정부의 영주귀국 지원이 종료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인하대학교 교육연구소 다문화교육융합연구사업단과 공동으로 사할린 한인들의 이주역사와 영주귀국자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이번 “사할린 한인의 망향가” 특별전은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이산의 시작, 강제동원 193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강
- 작성일
- 2015-09-21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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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특별전시
○ 제목: 황무지에서 지켜낸 민족혼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홀 및 강당 ○ 기간: 2014. 9. 1. ~ 2015. 1. 31. ○ 전시 구성 - 1부. 모국어와 민족문화의 전파자 고려극장 - 2부. 모국어와 민족 얼의 지킴이 고려일보 - 3부. 알마티 문화 사인방 - 4부. 친구들 소련 붕괴이후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고려인이라 부릅니다. 연해주로의 최초의 이주는 1864년 14가구가 지신허강 인근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로 150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까레이스키로 불리는 한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약 50만명 살고 있습니다. 1937년 소련이 연해주의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후 고려인들은 황무지를 개척하면서도 한민족의 얼과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고려극장과 고려일보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기념하면서 다음과 같이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모국어와 민족문화의 전파자 고려극장 모스크바영화대학 망명유학생 출신으로 고려인 문학 2세대를 선도하였던 한진, 고려사람 관련 다큐와 극영화를 제작하여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송 라브렌찌, 고려인가요 채집과 함께 카자흐스탄에 재즈를 처음 도입하였던 음악가 한 야꼬브 등 3인의 자료를 통해 그들이 희곡작가로, 악단장으로 재직하였던 「고려극장」을연출한다. ■2부. 모국어와 민족 얼의 지킴이 고려일보 고려사람들에게 문맹퇴치와 교육, 문화의 발전과 농업기술 등을 제공하여 왔던 고려일보사, 모스크바에서 원동까지 고려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온 안 빅토르, 1992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여 고려일보 기자로, 시인으로, 그리고
- 작성일
- 2014-09-01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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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특별전시
○ 제목: 자이니치 학교들-재일 한인 민족교육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홀 ○ 기간: 2013. 6. 13. ~ 10. 30. ○ 전시 구성 - 1부. 해방과 민족학교 - 2부. 한 민족, 두 학교: 한국학교와 조선학교 - 3부. 배움을 위한 투쟁 - 4부. 계속되는 노력 - 에필로그 일본에는 현재 약 54만 5천 명의 우리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온 유․이민들과 태평양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 동원되었다가 해방 뒤에도 귀환하지 못하고 일본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해방 직후 그들은 조국으로의 귀국을 희망하며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자녀들을 위해 ‘국어 강습소(國語講習所)’를 열어 민족 교육을 시작하였다. 식민 통치의 본산이었던 일본에서의 민족 교육은 순탄치 않았으나, 민족 교육은 기존의 민족 학교뿐만 아니라 민족 학급, 한글 교실 등의 새로운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재일 한인 사회의 민족 학교 설립과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민족 교육을 지켜왔던 과정들을 소개하고, 일본 한인 사회가 민족 교육을 통해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개최하였다. ■ 1부. 해방과 민족학교 일제 강점기에 건너왔던 재일 한인의 자녀들은 일본의 동화 정책에 따라 일본인 학교에 다니면서 ‘일본 제국의 신민, 천황 폐하께 충성’이라는 내용의 황민화 교육을 받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 한인들은 한반도와 가까운 항구로 빠르게 몰려들어 귀국을 준비하였고 귀국에 대비하여 자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600여 개에 달하는 ‘국어 강습소’가 일본 각지에서 열렸다. 그러나 고국
- 작성일
- 2013-06-13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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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특별전시
○ 제목: 젊음,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다-파독 광부, 간호 여성 이야기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홀 ○ 기간: 2012. 6. 13. ~ 11. 30. ○ 전시 구성 - 1부. 파독의 과정 - 2부. 파독 광부 - 3부. 파독 간호사 - 4부. 광부・간호사 단체 - 5부. 독일마을 - 에필로그 1960~70년대, 대한민국의 젊은 광부, 간호 여성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과 더 나은 삶을 찾아 각각의 사연을 품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봉급의 2/3 이상을 한국으로 송금하였고 이는 국내 경제 성장을 위한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50여년이 지난 오늘, 그들 대부분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북미 등 세계 각지에서 재외 한인사회 형성의 주역으로서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지난 몇 년간 독일 현지 출장 등을 통해 수집한 광부, 간호 여성들의 다양한 자료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그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1부. 라인강의 유혹 (파독의 배경) 1960년 말 6·25전쟁 이후 한국의 실업률 해소와 외화 획득의 필요성,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한 부족한 노동 인력 공급과 전후 복구 지원, 그리고 경제 원조라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광부 약 8천여 명과 간호 여성 약 1만여 명의 독일행이 이루어졌다. ■ 2부. 글뤽 아우프(Glück Auf) (광부들의 생활) 파독 당시 광부의 선발 조건은 20세~35세 남성으로 1년 이상 탄광 근무 경력이 있는 자였으나 실제로 광부 경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독일에 도착한 광부들은 광산 현장에 투입되기 전, 몇 단계의 사전 교육을 받고 채탄부, 굴전부, 잡부 등으로 나누어져 각
- 작성일
- 2012-06-13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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