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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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특별전시
○ 제목: 자이니치 학교들-재일 한인 민족교육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홀 ○ 기간: 2013. 6. 13. ~ 10. 30. ○ 전시 구성 - 1부. 해방과 민족학교 - 2부. 한 민족, 두 학교: 한국학교와 조선학교 - 3부. 배움을 위한 투쟁 - 4부. 계속되는 노력 - 에필로그 일본에는 현재 약 54만 5천 명의 우리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온 유․이민들과 태평양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 동원되었다가 해방 뒤에도 귀환하지 못하고 일본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해방 직후 그들은 조국으로의 귀국을 희망하며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자녀들을 위해 ‘국어 강습소(國語講習所)’를 열어 민족 교육을 시작하였다. 식민 통치의 본산이었던 일본에서의 민족 교육은 순탄치 않았으나, 민족 교육은 기존의 민족 학교뿐만 아니라 민족 학급, 한글 교실 등의 새로운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재일 한인 사회의 민족 학교 설립과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민족 교육을 지켜왔던 과정들을 소개하고, 일본 한인 사회가 민족 교육을 통해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개최하였다. ■ 1부. 해방과 민족학교 일제 강점기에 건너왔던 재일 한인의 자녀들은 일본의 동화 정책에 따라 일본인 학교에 다니면서 ‘일본 제국의 신민, 천황 폐하께 충성’이라는 내용의 황민화 교육을 받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 한인들은 한반도와 가까운 항구로 빠르게 몰려들어 귀국을 준비하였고 귀국에 대비하여 자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600여 개에 달하는 ‘국어 강습소’가 일본 각지에서 열렸다. 그러나 고국
- 작성일
- 2013-06-13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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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특별전시
○ 제목: 젊음,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다-파독 광부, 간호 여성 이야기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홀 ○ 기간: 2012. 6. 13. ~ 11. 30. ○ 전시 구성 - 1부. 파독의 과정 - 2부. 파독 광부 - 3부. 파독 간호사 - 4부. 광부・간호사 단체 - 5부. 독일마을 - 에필로그 1960~70년대, 대한민국의 젊은 광부, 간호 여성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과 더 나은 삶을 찾아 각각의 사연을 품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봉급의 2/3 이상을 한국으로 송금하였고 이는 국내 경제 성장을 위한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50여년이 지난 오늘, 그들 대부분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북미 등 세계 각지에서 재외 한인사회 형성의 주역으로서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지난 몇 년간 독일 현지 출장 등을 통해 수집한 광부, 간호 여성들의 다양한 자료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그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1부. 라인강의 유혹 (파독의 배경) 1960년 말 6·25전쟁 이후 한국의 실업률 해소와 외화 획득의 필요성,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한 부족한 노동 인력 공급과 전후 복구 지원, 그리고 경제 원조라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광부 약 8천여 명과 간호 여성 약 1만여 명의 독일행이 이루어졌다. ■ 2부. 글뤽 아우프(Glück Auf) (광부들의 생활) 파독 당시 광부의 선발 조건은 20세~35세 남성으로 1년 이상 탄광 근무 경력이 있는 자였으나 실제로 광부 경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독일에 도착한 광부들은 광산 현장에 투입되기 전, 몇 단계의 사전 교육을 받고 채탄부, 굴전부, 잡부 등으로 나누어져 각
- 작성일
- 2012-06-13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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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특별전시
○ 제목: 동방을 밝힌 등불,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홀 ○ 기간: 2011. 6. 10. ~ 8. 7. ○ 전시 구성 - 1부. 이상향, 명동촌의 형성과 정착 - 2부. 명동의 5현 - 3부. 명동촌의 생활문화 - 4부. 명동학교 - 5부. 명동교회 - 6부. 명동촌 사람들 - 7부. 북간도의 항일독립운동 - 에필로그 명동촌은 1899년에 김약연을 비롯한 다섯 가문이 두만강을 넘어 북간도로 이주하여 세운 한인마을이다. ‘동쪽(한반도)을 밝힌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국 광복을 밝히는 등불을 자처하며 명동학교를 건립하여 민족주의교육 실시 및 항일운동가들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이번 특별전은 지금까지 발굴된 초기 한인이주 및 명동촌 형성과정 관련 자료뿐 아니라 최근의 명동촌 모습과, 명동학교 재건 모습 등을 전시하여 명동촌 한인선조들의 열정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최하였다. ■ 1부. 이상향, 명동촌의 형성과 정착 1800년대, 두만강 변의 함경북도 농민들은 산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땅으로 인해 농사 짓기가 힘들자 두만강 저편의 비옥한 땅인 간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899년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김약연(金躍淵)을 비롯해 총 5가문 142명 모두가 평등한 이상적 공동체 마을을 건설하려는 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넜다. 이들은 장재촌 지역에 자리를 잡고 황무지를 개척하여 가옥을 건설하고 서당을 세웠다. 이후 김약연은 장재촌, 윤하연과 문병규는 용암동, 남위언은 중영촌, 김하규는 대룡동에 각각 정착하여 마을을 발전시켜 나갔다. ■ 2부. 명동의 5현 명동촌을 일군 다섯 가문의 지도자(김약연, 김하규, 남도천, 문병규, 윤하현)들은 명동의 5현
- 작성일
- 2011-06-10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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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특별전시
○ 제목: 또 다른 삶의 울림-낯선 땅, 낯선 생활 ○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전시홀 ○ 기간: 2010. 6. 10. ~ 8. 8. ○ 전시 구성 - 1부. 사탕수수 노동자의 삶 - 2부. 에네켄 노동자의 삶 - 3부. 독일 노동자의 삶 이번 특별전은 먼 타국에서 피부색의 차이로, 문화의 차이로, 언어소통의 부재로 인해 받았을 수많은 차별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정착한 우리 선조와 동포들이 이룩한 삶과 그 속에 담긴 애환을 사진과 관련유물을 통해 되새겨 보고자 개최하였다. ■ 1부. 사탕수수 노동자의 삶 구한말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던 국내의 생활고와, 노동집약적인 사탕수수 농업에 노동력이 필요해진 하와이 내부 사정에 의해 1902년부터 1905년까지 약 7,400여 명의 우리 선조들이 하와이 이민을 떠났다. ‘루나’의 감시와 뜨거운 햇빛 아래서의 농장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달팠으며, 농장에서의 규칙적인 생활과 낯선 제도의 압박감 또한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 2부. 에네켄 노동자의 삶 1905년, 새로운 삶을 찾아 1,033명의 한인들은 인천 제물포를 출발하여 낯선 멕시코로 향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 이민 중개인에 의해 단 한차례로 끝난 대규모의 불법 노동이민이었으며, 그들을 맞이한 것은 유카탄의 뜨거운 불볕더위와 난생 보지도 못한 에네켄 밭이었다. 각 농장에 배치된 한인 노동자들은 형식상의 계약 노동자였지만 실제적으로는 채무 노예나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 ■ 3부. 독일 노동자의 삶 1960년대 초 한국정부는 늘어나는 실업률 감소와 독일의 선진 기술 및 외화획득을 위해 1963년~1977년까지 광부 7천 936명, 1966년~1976년까지 간호사 1만 723명을 독일에 파견했다. 당시 독일로 떠난 광부와 간
- 작성일
- 2010-06-10
- 담당부서
- 한국이민사박물관
- 자료관리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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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부서 한국이민사박물관
- 문의처 032-440-4708
- 최종업데이트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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