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고속도로의 건설 의의

  • 1900년 인천과 서울간 철도가 부설되었을 당시 걸어서 하루 걸리던 거리를 45분으로 단축한 후, 경인고속도로건설로 다시 18분으로 단축하기까지 68년의 시간이 소요됨
  • 우리나라가 고속도로 건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58년 일본의 나고야 고속도로가 착공된 직후로 본격적인 고속도로 건설은 이로부터 6~7년뒤 논의됨
  • 1964년 12월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의 초청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면서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시찰후 고속도로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짐
  • 1965년 9월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도로 건설의 필요성과 기술적 건립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본격적인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짐
  • 1967년 3월 경인·경부 등 4개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되었으나 재정적·기술적 한계 등으로 반대여론이 일어남
  • 1960년 중반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0달러 정도로,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재원확보가 매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건설 경험의 부족, 빈번한 건설계획의 변동 등으로 인해 고속도로 건설에 제약을 많이 받음
  • 1967년 3월 착공하였으나 건설장비의 노후화, 장비부족 문제 등의 물리적인 제약과 반대여론으로 같은해 5월 기공식 이후에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함
  • 1968년 12월에 개통하여 시간적으로 약 1년 8개월이 소요되었으나 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기간을 제외하면 실제 공사기간은 8개월정도 소요됨
  • 경인고속도로는 도로 연장은 짧지만 초단기 건설된 고속도로라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며, 최초의 고속도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

시간적·경제적 효과

  • 경인고속도로 개통은 기존 1시간 소요되던 차량이동시간을 20분 내로 단축시켰으며, 여객 및 화물수송량의 증가와 인천-서울간 광역도시권이 형성에 기여함. 이에 인천은 서울의 관문도시로서 그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산업도시로서 더욱 성장함
  • 경인고속도로의 건설로 빠른 수송이 가능하게 되면서 구로, 주안, 부평 등 수도권 인근에 조성된 국가산업단지 발전에 기여함
  • 또한 1973년 인천항 제2도크 구간이 개통되어 대규모 화물량 수출입이 가능하게 되면서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한 화물량 수송실적이 증가
1970년대 고속버스 개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