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반상회보

[9월의 독립운동가] 심 훈(沈熏) 선생

담당부서
자치지원과 (032-440-2430)
작성일
2003-09-29
조회수
1161
(1901. 9. 12∼1936. 9. 16)
□ 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심훈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습니다.

□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감수성 예민한 수재로서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습니다. 여기서 일본인 교사의 식민지 교육에 분노하며 민족문제에 눈뜨게 되었고, 독립의지를 키웠습니다.

□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탑골공원 독립선언 민중대회에 참여한 뒤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특히 3월 5일 학생들이 중심이 된 남대문역(서울역) 만세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8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 출옥 직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에서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 집에 얼마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리하여 절대독립과 무장투쟁론을 주장하던 대표적 인물인 두 분의 영향으로 강렬한 독립사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 1923년 귀국한 뒤에는 이를 바탕으로 때로는 실제적으로, 때로는 문학작품을 통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철필구락부에 참여하여 일제의 언론탄압을 규탄하였고, 융희황제(순종)의 붕어직후 [통곡 속에서]라는 시를 발표하여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던 것입니다.

□ 특히 광주학생운동의 여진이 남아 있던 1930년 3·1운동 기념일을 맞이해서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발표하였다. 이는 민족독립의 '그날'을 고대하는 비원을 담은 시로, 항일 저항문학의 최고 금자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 나아가 1930년대 초반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브나로드운동과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문자보급운동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상록수]라는 농촌계몽 소설을 집필하였다. 이를 통해 만주침략 이후 강화된 일제의 농촌통제에 대항한 민족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것입니다.

□ 그리하여 [상록수]의 영화화를 추진하였지만, 일제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상록수]의 단행본 출판에 힘쓰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1936년 9월 16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자료와 사진을 9월 한 달간 전시할 예정이며, 기념학술 강연도 준비중이다. 또한 충남 당진에서는 제25회 상록문화제가 10.11∼10.14 까지 개최됩니다.

자료제공 :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780-9808)
첨부파일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자치행정과
  • 문의처 032-440-2436
  • 최종업데이트 2023-05-1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