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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국회 도서관과 사사오입 개헌

작성자
안 * * *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주제 : 식품 안전

제 목 : 이숭녕씨는 국어학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식품안전의 과도기 정부에서 ‘식’소리도 않고 무리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은

대통령 연금을 타기 위해서인가 ? 아니면
아버지 박정희 정부시에 제정된
대통령 예우법 (대통령 퇴임 후 대통령에게 매달 지급하는 연금과 관련된 법) 을 개선하기 위함인가 ?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매달 대통령 연금을 탔을까 ?
공무원의 연금은 한국의 국적을 버리면 지급이 안된다고 얼핏 들었다.
본인과는 관련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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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녕........ 이씨의 숭(=흉)은 길다. ( 하나, 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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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아웅산 폭탄사건과 울릉도 간첩단 사건

이숭녕씨는 국어학자였다.
본인이 동래여자 중학교 3년을 졸업하며 3년 개근상을 받으니
작은 한글 사전을 상품(賞品)으로 주었다.
소중하게 사용하다가 눈이 어두워지고 돋보기를 끼면서 이를 버리고
글자가 크고 내용이 많은 큰 한글 사전을 다시 구입하였다.
영어 사전과 같이.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정부, 아웅산 폭탄 사건은
사고가 난 후 그곳에 갔던 각료(장관)가 대부분 죽었고 이후 장관들이 죽음으로 대부분 교체가 되었다.
그로써 장관이 대부분 바뀐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의 대통령이였던 전두환 대통령은 행사장에 약간 늦게 도착하면서
사고에서 벗어났다.
당시 경호실장이 안씨였다 고 신문에 났다.
당시 외무부장관은 이범석씨였다.

이숭녕...... 이씨의 숭(=흉)은 길다. 맞는가 ?


☆ 1

2015. 1. 26(월), 대법원(주심 : 김창석 대법관)에서
1970년대의 대표적인 공안 조작 사건 가운데 하나인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전영관씨의 친·인척들이 40년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

.

둘째) 이승만 정부의 사사오입 개헌

사사오입 개헌은 국회에서 정당하게 의결된 개헌안이었지만
명명이 불합리한 용어였다. 4를 죽이고 5에 합한
사사오입이라고 잘못 설명한 것이다 ( 최순주 국회 부의장의 설명)
남의 나쁜 말, 말따먹기 좋아하는 한국사람들.

그런데 대학의 교과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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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5월에.............개헌안을 제출했다. 개헌안은 재적의원 203명가운데
135명이 찬성하여 개헌선인 136표에서 한표가 모자라 부결되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이틀 뒤 국회 본회의에서
개헌선인 135.333을 사사오입하면 135표라는 억지 논리로
부결선포를 뒤집고 통과를 선언했다 (사사오입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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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기록하고 있다. 교과서는 저자의 경험에 의해서 쓰여지지는 않는다.
상기의 교과서에서의 참고 문헌은 181개의 서적이 참고가
되어졌다. (551쪽 ~ 556쪽)
* 그것은 국회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서적을 참고문헌으로 했기 때문이라고요 ? 아니다. 본인이 자라면서 한국사를 공부할 때도 ‘사사오입 개헌’ 은 잘못된 개헌이라고 선생님이 설명한 것으로 기억한다.

상기 줄친 부분의 글은 [한국사의 이해], 송찬섭, 김남윤, 윤대원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8년 446쪽 - 447쪽의 대학의 교재이다.



둘째 -1) 이승만 정부의 사사오입 개헌

* 당시는 사람들의 이 박사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한 때였다. (99쪽)

* 1954. 11. 28일, “ 최순주 국회 부의장이
203명의 2/3는 135. 333인데 0.333은 한 사람이 될 수 없으므로
사사오입해서 결국 203명의 2/3는 135명이 타당하다 ” 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나선 것이다. (100쪽)

-- [ 김영삼 회고록], 김영삼, 백산서당, 2000년 --



☆ 2

이승만 정부에서의 조봉암씨에 대한 간첩 혐의에 의한 죽음은
이명박 정부(2008년 - 2012년)에서 유가족들이 법원에서 무죄로 다시 판결을
받으면서 명예회복이 되었다고 신문에 났다.
오늘의 대한 항공의 회장이 조회장이고 전두환 정부 말기 대한 항공
폭파사고(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폭파범)는 어쩌면 아웅산 폭탄사고와 같이
위장 사고일 가능성이 짙다고 본다. 맞는가 ?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의 천안함 폭침 사건은 북한이 이를 부인을 하여
보건복지부 자유 게시판에 제안자가 수차례 등록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세월호 침몰 사고는 선장이 이씨였고
선장은 법원에서 36년의 감옥형을 받았다고 한다. 신문 기사의 내용이다.
(1심 - 판사 : 임**씨 )
제안자는 세월호 침몰 당시 경기도 교육청에서 세월호에 수학여행의 목적으로 탑승했다는 경기도 단원고 학생들이 모두 구조가 되어 무사하다는
연락(휴대폰 문자)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다.
식품 안전의 과도기에 식품이 불안한데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계획한
단원고의 고교 일정이 참 한심하다.


첨부 : ☆ 3 해방후 정부사의 이해 - 사사오입 개헌


================ 첨 부 : 사사오입 개헌 ========================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 3, 해방후 정부사의 이해 - 사사오입 개헌


사사오입 개헌이란 ?
건국 후의 초대 정부인 이승만 정부(이승만 대통령의 초임 연령 : 75세)
는 정부 수립의 1948년부터 시작하여 4년 중임제의 임기는
8년 후이므로 그 임기가 1956년까지이다. ( 75세 + 8 = 83세)
그간 1950년 6.25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하여
56년 임기가 끝나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 연임제한 철폐를 위한
개헌을 1954년 9월 국회에 상정했다. 당시 여당은 자유당이었다.
그 결과 국회의원의 재적의원은 당시 203명이며 개헌은 중요사안이라서
재적의원의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했다.
1954년 11월 치루어진 개표결과는 찬성이 135명 이었다.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 이다. 135.333 이란 숫자는 135 란 수를 넘는
수이지만 절대 136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결이 된 것인데
이는 이후 이승만 정부의 불씨가 되었다. (국회의원들이 무식했군 ! )

이승만 정부의 임기는 1960년 ( 83세 + 4 =87세 )이었고 대통령의 연세는
1960년 당시 87세였지만 초대 대통령 연임제한의 개헌 헌법에 의해
1960년 다시 출마했다. ( 8년 중임후, 개헌, 4년 집권후 다시 출마)
그런데 그 해 3. 15일 자유당의 선거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4. 19 학생의거로 나아갔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5월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국회의 정치와 정부가 동일시화된 결말로 이해가 되어진다. 맞는가 ?


참고 문헌 :
김영삼,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김영삼 회고록 ], 2000년, 백산서당,
98쪽 ~ 143쪽,


참고문헌 : [한국사의 이해], 송찬섭, 김남윤, 유대원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8년 446쪽 ~ 447쪽. 551쪽 ~ 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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