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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거꾸로 읽어 보는 역사

작성자
안 * * *


작성자 : 안정은

제 목 : 거꾸로 읽어 보는 역사


부산시 공직자로 근무하면서 같은 배경에서
호남사람이 불평등의 조건에서 파면되어 나가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부산 동래구 청룡동 사무소, 주민등록증 분실사고, 호남이 고향인 김영구씨 - 박영수 부산시장, 옥성선 동래구청장 당시(1976년),

이후 박영수 시장님 부인이 돌아가셔서
동래구청 여직원들이 온천1동 시장관사에 문상을 간 기억이 난다

해경함장으로 1974년(5월 28일),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신 해,
동해안(속초 부근)에서 실종된 나의 아저씨, * 안정열씨.
가족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용감하셨다.
조달청에 다니는 여직원과 결혼 후 자녀 둘을 낳고 화목하게 지내시다가 근무 중 바다에서 실종된 것이었다.
“금강산도 가고 이산가족도 만나는데 영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아마 그 때 죽었는가 보다...” 고 1년 전에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 북한의 소행’ 이라고 신문에 대문짝 같이 나왔었다.

내가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간부로 일하고 졸업하기 한해 전(1983년 10월), 해외연수로 동남아시아에 나가기 전,
‘ 아웅산 폭발사건’ 으로 한국의 각료가 대부분 죽었다.
홍콩의 잡지와 한국 국내의 신문기사가 이 사건을 대서특필 하였다 (정부 제안서 42쪽 - 43쪽 언급)

-- ( 이하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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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열씨 ------ 해양경찰관으로 근무한 나의 오촌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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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부산시장 박영수 : 1971. 6. 12 ~ 1977. 7. 6 )

당시 내무부 장관,
홍성철씨, 서울대 출신 (1973년 12월 - 1974년 8월)
→ 장관 박경원 (전남 영광 출신) : 1974년 8월 - 1975년 12월

- 1973년 6. 5일 : 제안자, 청룡동 사무소 채용 근무
- 1974. 5. 28일 : 오촌 아저씨 해경함장 안정열씨 동해안 속초에서 근무 중 함포 사격으로 실종
- 1974. 8. 15일 광복절 식장에서 영부인 육여사, 일본 조총련계 문세광의 총에 의해 사망

1979년 10. 26일 : 박정희 대통령 서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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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974년은 어떤 해인가 ?


1974년은 박정희 정부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혁명을 일으켜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헌정에 의하면 중임하더라도 70년도가 임기가 끝나고 1971년에는 정권을 물려주어야 하는 해였다.
그러나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고,
1970년 11. 13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2년 10월 7일 유신선포를 하였다.

1971년은 내가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인데
나는 대학에 진학을 하기 위하여 책과의 전쟁을 하였다.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는 좋은 자리가 은행원인데 한국산업은행 외에는 시험으로 입사하는 은행이 없다고 들었으므로
1971년 3월의 3학년에는 진학반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 때의 사회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뜻있는 인사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혁명을 일으킨 것 자체에 대하여 공공연하게 비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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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 제안자)


回 恨 - 연탄이 사라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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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동래구청 세무2과 (1977년 - 1980년 9. 3일)에서 통계의 업무를 보고 있을 때이다.
여직원들은 통계업무를 더러 맡기지만 내가 통계업무를 자주 보아온 것은 고등학교가 상업학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봄날, 연탄까스를 마신 날을 기억한다. 집이 이층집이라 윗층에서 혼자 잤는데 일어나서 바지의 똥을 손으로 만진 기억이 난다.
나의 두뇌가 연탄까스를 마시고 희미하면서도
방에서 똥을 싸면 안된다는 의식은 있었는가 보다. 이후의 필름은 끊겼지만.......
그리고는 살아났다. 말끔히. 집에서 나를 데리고 가까운 병원(김말0 욋과)에 갔기 때문이다.
연탄까스를 마시고 똥을 사면 산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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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경남 진해시 공무원에서
부산시 공무원으로 전입해 온 김병* 여사님(오래도록 공직생활을 했음)께서
들려 준 이야기 한 토막.
김병*여사님의 여동생이 서울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는데 집(진해)에 왔단다.
선을 보기 위해서....... 그런데 그 날 밤에 죽고 만 것이다. 연탄까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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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나와 함께 해외 연수(1983년 10월)를 간 일원 중의 한사람(소재술)이
근무지를 서울로 옮겼는데 (충남 여성회관 →서울 소재의 교육부)
이후 셋방(서울)에서 연탄까스를 마시고 죽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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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지금 부산시에 근무하는 이말* 국장(여 )이
사무관 시험을 치러 가는 날 일어나 보니 자녀(?) 둘이 연탄까스로 죽어 있더라”는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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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까스 사고 리스트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산시에 공직자로 근무한 나의 고등학교 한해 후배(여, 이복* - 부산여자 상업고등학교 )도
통계업무를 자주 보았다. 근무지를 부산시 차량등록사업소로 옮겨서 근무하다가 결혼을 했고 이후 신혼에 연탄까스를 마셨다.
남편은 죽고 후배 공무원은 살았다. 이후 그녀는 공직을 퇴직하였다.
19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선진한국의 주거시설도 보일러 시설로 바뀌었다.
연탄아궁이는 옛날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연탄까스를 마시고 죽은 이들은
가족과 이웃들에게서 옛이야기로 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또 연탄까스를 마시고 산자는 연탄까스를 마시고 죽은 자를
잊혀진 옛이야기로 묻어두기에는 미안하지 아니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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