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위한 송림2동 자원봉사벽화
드라마고(퍼포먼스 반지하 대표) 2015년 12월 6일 일요일 오전 11시 57분
어제부터 창밖에 페인트 깡통소리가 들린다.
몇 년전 신한은행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골목길에 고스톱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주민 중 누군가가 좋지 않다며 시에 민원을 넣었고
시의 ‘사회복지 봉사과’에서 업체를 선정하여 그림을 지우고 새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한단다.
어제 오전 병원가는 길에 한 집에 작업이 들어갔길래
‘한 집이 또 자발적으로 페인트칠을 하나 보다’했는데
다녀오니 다른 집들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 사이 어떤 작업인 지 물었고 시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좋아하지 않았다길래
나를 관련 작업자라고 설명하고 시안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보여준 시안을 보며 “이 시안으로 주민동의 구하신 건가요?” 물었다.
동의 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집에 찾아가 시안을 보시고 동의하신 거냐고 물었다.
보지 못했단다.
그 사이 현장작업자 한 사람이 다가와 이웃에게
‘시안 바꿀 거니까. 이 사람 말 듣지 마세요’하다.
‘이런 건방지게!’ 나도 응수 했다.
‘건방지다니 나도 사십 넘었어! 현장에서 작업한다고 무시하는 거냐!’라고 칠듯이 다가셨다.
‘나도 현장일 합니다. 왜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와서 그렇게 이야기합니까?’
싸움으로 번질 뻔 한 상황 나는 ‘당신에게 말을 조금 심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당신이 주민들 간에 대화에 끼어 나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해서 나간 말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치려고 들지만 다른 작업자들이 말리자 돌아선다.
보여준 시안은 6집 모두 백색바탕에 브라운 하단 띠를 두르고
같은 브라운 색으로 나무 몇 그루씩이 그려져 있었다.
저녁에 보니 같은 바탕색들이 이어지자 골목은 하얗게 변해
겨울 날씨와 연결된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각 집들이 사라지는 느낌이 더 아쉬웠다.
모두가 백색바탕에 집마다 조금씩 다른 나무실루엣 그림들이 들어가면
집들의 개성과 지난 그림의 문제들은 해결되는 것일까?
주민 누군가의 말처럼 ‘못사는 동네에 대충 그려진’ 작업이 남겨질 것은 자명하다.
집의 성격과 생기있는 색깔, 주민의 참여와 같은 세밀한 요소는 다시 몇 년이 잠식되겠지.
왜 시 사회복지 봉사과에서 업체에 벽화작업을 맞기는 것일까?
그 업체는 왜 전문성보다 금액이나 기간 등에 맞춰 타인들의 주거와 동네 공간에
연구되지 않은 작업을 하는 것일까?
현장 작업들과의 갈등이 있고 업체에 직원과 통화했으나 자신들은 모르니 시에 물어보라고 했서 시에 민원을 넣었다.
요지는 두가지 ‘시안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주민동의를 구했는가?’와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기에 작업의 내용이 성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왜 사회복지봉사과에서 업체와 하청의 방식으로 이런 작업을 하는 지는 묻지 못했다.
내가 관련작업 전문가임을 밝혔지만 그것의 의미가 작동될 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결국 작업은 진행되었고 민원은 다음주 월요일에 전달 된단다.
지저분했던 원색의 고스톱그림들이 지워지는 것은
나도 바라던 바이고 그래서 2주전 한 집에 그 그림을 지우고 컬러 도색을
주수업의 실습으로 진행하였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다른 그림들도 지우고 색을 연결하고 싶었다.
너무 늦은 걸까.
올해 이사온 사람으로 주민들과의 유대가 아직 덜 형성되서 일까.
이웃들은 그들의 시안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저분한 그림을 지우고 시에서 하는 작업이며 공짜로 그려준다는 말에 동의사인을 하여주었다.
내가 주민들에게 시안을 보고 동의해야 한다는 말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뭇거린다.
업체 직원들이 와서
2주전 우리쪽에서 칠한 색이 너무 새다고 하는 말에 어떤 주민은 ‘왜 그렇게 했데?’지금 그림을 지울 것이라는 그들의 말에 ‘지금 그림이 좋은데’라며
자신의 개인적 취향의 표현을 내어 놓으신다.
한두시간 동안 새롭게 만난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는 모두 단절되어 있었다.
자기집에 대한 권리와 보라보는 자의 권리, 작업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뒤섞여 있지만 정리되어 있지 않다.
현장작업자들은 정해진 일을 끝내야 임금을 받을 수 있고,
업체직원들은 시와의 작업이자 협의를 거친 내용이라는 정당화를 가지고 수익사업을 해야하고
주민들은 내집의 벽을 스스로 칠하는 일은 어려우니 누구든 해주면 좋은 일이고,
관련 작업의 전문가랍시고 내집의 벽도 아닌데 나가서 그 많은 사람들과 말씨름을 하는 나도 어찌 보면 내 영역에 대한 자만과 앞으로의 프로젝트를 걱정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시는 민원을 인천시자원봉사센터에 넘기고, 센터는 업체에 넘기고, 업체는 현장작업자에게 맡기는 방식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를 보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이 장면의 모두는 각자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해 있었다.
자신의 집의 담장에 대한 책임과 권리, 그 담장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웃들의 시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주민의 입장, 자원봉사프로그램의 세밀한 접근에 대한 생각과 대화는 금지된영역이 된 것 같다.
내가 다 해내지도 못하고, 내가 가는 곳에서 점점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지고 있으니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에 대해 쓴 책과 나의 국립현대미술관 기사와 이력서와 작년 이마을에서 진행한 작업내용을 관련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되는 것일까? 내도 그들처럼 똑같이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 이 미완의 도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시골로 가서 먹거리 농사지어 먹고 다른 집 품팔이 다니며 잘 난 것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헌집을 고쳐 팔아먹고 다시 사서 고치고 파는 일로 이 도시에서 먹고 살아야 할까?
주수업에 다른 훈더르트 바사의 작업같은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과 미디어의 힘과 의식있는 행정과 이것을 지지하는 관객들이 모두 있어야만 하다니...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인 것 같다.
지금은 공공작업이라는 영역이 너무 넓어졌고, 너무 많은 작업자들과 기업들까지 이 작업에 뛰어들었지만 민주적으로 예술적으로 좋은 작업이 더 많이 늘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