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안정은 ( 제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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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서 :
한국전통식품 및 전통양념(조미료) 제조와 유통에 따른 정부 규제에 관한 고찰과 그 발전방향 -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1999년 10월 20일- 김대중 정부)
제안자 :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기획감사실,
지방행정 주사 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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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오늘 3월 26일은 안중근 순국일
10월 26일은 안중근이 일본 이토오히로부미(이등박문)를 총살하여 죽게 만든 날이다. 장소는 하얼삔.
안중근은 이유없이 일본인의 간부급을 죽인 것인가 ? 아니다. 세계의 추세(제국주의)에 따라 일본이 호시탐탐 조선을 넘보았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명성왕후(민왕후)를 죽인 것이 그 대표적인 하나이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일본의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죽이고
이듬해인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
1910년 3월 26일 교수형으로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후 10년 후인 1919년 1. 21일에는 또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독살설이 퍼졌고 이것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민족은 갖은 압박을 받았지만 해방이 되었다.
주위에서 살펴보면 윤씨 성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는 풍이라는 유전성이 있는 병이 있는가 하면 본태성 고혈압(이씨)이란 병도 있고 또 액취증, 언챙이도 있었다. 본태성 고혈압과 언챙이는 유전성의 병이라고 하나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2010년 3. 26일(이명박 정부)은 안중근의사가 순국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안중근의 거룩한 그런 정신이 한국민의 가슴에 살아있었으므로 한국은 독립이 되고 건국이 된 것이었다.
-- 2013. 3. 26(화), 2013. 6. 8(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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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1999. 10. 20, 제안서 [한국전통식품 및 전통양념 제조와 유통에 다른 정부 규제에 관한 고찰과 그 발전방향-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 , 민주시민교육 282쪽,
- 2009. 10. 22일, 조선일보, 구태훈 성균관대 교수, 허얼삔의 총성
- 2009. 10. 23일, 한겨레, 노형석 기자, 서예, 안중근 특별전
- 2009. 10. 24, 조선일보, 전봉관 KAIST 교수,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
- 2009. 10. 26, 조선일보, 이위재 기자, 안중근의 후손이란 것에 긍지, 책임감 느껴
- 2009. 10. 27, 조선일보,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 안중근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 2009. 11. 9,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다른 평화론의 차이 ?
- 2013. 6. 7(금),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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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제 목 : 식품안전, 시기상조인가 ?
태화가 뜸뜸이 보인다.
부산의 향토백화점인 이전의 태화백화점 ,
울산의 태화강,
태화 고무장갑 등등
1919. 1. 21,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갑작스런 죽음,
독살설은 전국으로 퍼졌고 이는 곧 3. 1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는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모였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들은 *태화관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식(민족대표 29명 참석)을 가진 뒤 일제 당국에 자수하여 구금되었다.
3월 1일 탑골공원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했다. 시위운동은 전국에서 일어났으며 해외동포들도 참여했다.
--「한국사의 이해」, 송찬섭, 김남윤, 윤대원 공저, 한국통신대학교 출판부, 2008년 333쪽 --
-- 2009. 8. 15(토),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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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관 - 서울 종로 인사동 소재의 ‘태화관’ 이라는 음식점에서
하루 전인 2월 28일 저녁, 비밀리에 독립선언식(33인 중 29인 참석)을
가진 뒤 일제당국에 자수하여 구금되었다. 즉 탑골공원에서는 불참.
* 대한민국 임시정부 : 1919년 4. 13일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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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919년 3.1 독립 운동
1919년 2. 8일 일본 동경(=도쿄)의 조선 YMCA 강단에서 일본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대한독립선언서를 채택했다 ( 2.8 독립선언)
민족자결주의와 파리 강화회의에 고무된 이들은 여러 차례 비밀회의를 거쳐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한 뒤 민족대회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이날 유학생 총회를 열고 독립선언식을 가졌던 것이다.
같은 무렵 나라 안에서도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나라 안팎에 독립을 선언하여 독립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은밀히 진행되었다.
1919년 1월부터 천도교, 기독교, 불교 그리고 학생 대표들이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고 3.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과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약속했다. 3.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함께 하기로 한 민족대표(33인)가 불참한 가운데 학생 등 시민들이 중심이 되었다.
-- (중간 줄임)--
0. 철도 기관수 차금봉의 항일 독립 운동
- 박정희 정부시절 차지철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이였다.
1979년 10. 26일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김재규(당시 중알정보부장)의 총에 죽었다 -
1919. 3. 22일 철도 기관수 차금봉은
잡역 노동자와 부근의 전차차장, 공장 직공 등 700 ~800여명을 이끌고 만리동에서 독립문까지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그는 27일에도 만철 경성관리국 조선인 노동자의 시위를 조직하고 서울역 앞에서 조선노동대회 조선독립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파업시위를 주도했다.
-- 이하 줄임 --
-- 한국사의 이해, 송찬섭, 김남윤, 윤대원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8년 333쪽 ~33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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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제 목 : 중국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중국 하얼빈驛(역)에
2014년 1월 19일, 안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들어섰다.
중국 하얼빈시와 하얼빈시 철도국은 이 공사를 그동안 비밀에 붙여진채
진행이 되었으며
이날 기념관의 개관식에는 헤이룽장성 부성장을 비롯한 중국측 인사들만
참석했다.
규모는 231㎡ (70평)으로 하얼빈역 귀빈실 내에 위치해 있으며 건물 내부에
안의사의 의거 현장을 조망할 수 잇도록 조성되었다.
그동안 간단한 표식만 있던 안의사의 저격 현장에 ‘ 안의사 이등박문 격살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 라는 설명 문구를 눈에 잘 띄게 걸어 놓았다.
기념관의 글은 한. 중 양국어로 전시되었으며 기념관에 걸린 벽시계는
안의사의 의거 시각인 오전 9시 30분에 고정되어 있다.
-- 조선일보, 2014. 1. 20일(월), 안용현, 김진명 기자 --
-- 국제신문, 2014. 1. 20일(월), 정유선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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