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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안중근의 맏딸, 안현생과 그녀의 남편 황일청

작성자
안 * * *


- 책 ‘안중근家의 사람들’ 이 출간이 되었으며 안중근을 뒤따른 형제, 사촌, 조카들이 3대에 걸쳐 15명이 독립 유공자의 포상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7. 4. 6일, 이선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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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안중근의 맏딸, 안현생과 그녀의 남편 황일청
제 목 : 광복군


- 안중근의 외손녀, 황은주님 -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났다. 본은 순흥안씨.
안중근 의사(처 : 김아려) 의 유일한 생존 외손녀인 황은주님 (87세),
이화여대 기악과를 전공하고 미국에 있는 자식들과 떨어져 한국에 살고 있다.


안중근(처 : 김아려) 의 아버지는 안태훈씨,
안태훈씨는 부친 안인수씨의 삼남으로 부친이 공부를 시켜 안태훈씨를
진사에 합격을 시켰다.
안태훈씨의 처는 조마리아, 즉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다.
안중근은 안태훈씨의 장남으로 종교는 캐톨릭 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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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아래 안정근, 안공근의 동생이 있었다. 두 동생인 안정근과 안공근은
김구를 도와 독립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다.
김구의 장남인 김인과 안중근의 동생 안정근의 딸 안미생이 결혼하면서
두 집안은 더 돈독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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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2남 1녀를 두었으나 큰 아들(안분도)은 6세때 의문사했다.
들째 아들 안준생이 친일파로 불리우는 안준생씨. 안중근이 죽인 이등박문의 아들에게 ‘ 망부를 대신해 속죄한다 ’ 고 사과를 하여 안준생씨는 평생 ‘ 변절자’ 의 시비에 말렸다.
안중근의 맏딸이 황은주님의 어머니, 안현생씨다.
* 안현생씨는 아버지 안중근의 하얼삔 의거로 서울 명동 수녀원에서 프랑스 신부의 보호 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가족과 합류를 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과 만나 결혼을 한다.

황일청은 안중근의 유일한 사위이며 황은주님의 아버지다. 안중근 의사의 유일한 생존의 외손녀(황은주님)가 ‘ 연금을 받지 않느냐 ’에서
아버지(황일청씨)에 대한 연금을 신청했더니 ‘독립운동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 며 기각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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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생씨 .................대구 효성여대 (현 카톨릭대)에서 불문학 교수로 지내다가 57세 고혈압으로 사망
임시정부에서 있던 이범석 장군 (초대 국무총리)이 황일청씨의 친구였다. 이범석 장군은 황일청씨가 죽은 소식을 듣고 부인을 보내어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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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주님의 아버지인 황일청씨는 비명에 갔다. 해방 후(1945년 12월 3일) 광복군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범인은 중국 공안(=한국의 경찰과 같음)에 잡히면서 드러났다.
황일청씨는 신흥무관 학교(당시 이시영이 설립한 독립군 양성기관)를 나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군무부 참사를 지냈다. 상해(상하이)의 임시정부가
- 상해(=상하이) 홍구공원(=홍커우 공원)에서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일본인에 폭탄투척)로 -
항주(= 항저우)로 옮기고 다시 중경(충칭)으로 옮겼다. 그러나 황일청씨 가족은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상해는 일본이 점령하고) 황일청씨는 일제에 체포되어 평양으로 압송이 되어 5년간 연금생활을 했다.
그런데 일제는 일본의 담당자를 중국 장쑤성 쉬저우 (강소성, 여주)에서의 거류민 단장으로 발령을 내자 황일청씨를 ‘ 조선인 교민회장’ 으로 데려갔다. 따라서 황은주님 가족도 쉬저우(서주)로 옮겨 갔다. 이들 가족은 1945년 8월 해방을 이곳에서 맞았다. 해방이 되자 일본에서 벗어난 조선 학병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귀국선을 기다리는 6개월 동안 황일청은 집 아래층에 교민 자녀를 위한 ‘ 서주 한국 중학교’를 열었으며 조선 학병들로 교사진을 꾸렸다.
한편 해방된 한국으로의 귀국선(귀국하는 배)을 서주 (쉬저우)에서 타기 위해 중경(충칭)에서 상해로 내려오던 40여명의 광복군이 이 도시로 와서 광복군과 조선학병이 이곳 서주(쉬저우)에서 만났다. 광복군은 자기 말을 따르라며 점령군처럼 행세를 하면서 황일청씨와 학병을 일본의 앞잡이로 보았다.
1945년 12월 3일 밤 10시 쯤, 황일청이 있는 방에서 ‘꽝’ 하는 굉음이 울렸다. 황일청의 머리에다 쏜 것이다. 황은주님이 1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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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 안중근 평전, 김삼웅 저, 시대의창, 2009년 1쪽 ∼79쪽
2. 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저, 추수밭, 2009년, 314쪽, 안중근 연보
3. 조선일보, 2015. 11. 23일(월), A31면, 최보식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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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 11. 23일(월)
부산시청 (시장 : 서병수) - 시민참여 - 시민 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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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 안정은 (제안자)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안보란 ?
제 목 : 광복군의 실체


안보는 안전보장이다. 군인은 국가(=나라)를 타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있다. 차량의 안전운행은 운전자의 (쌍방) 안전을 위해서 나라에 교통경찰이 있다.
식품안전을 위해서도 나라에서 식품의 안전을 인증하는 자(식품 전문가)가 있어야 마땅하고 음식점의 음식도 종사자들이 안전하게 만들고 있는지 검사하고 상부의 감독도 필요하다. 제안자가 국민이 먹도록 홍보하는 정부식품도 공무원이 직접 생산하고 직접 팔지를 않는다.
기존의 구군청의 식품위생직 공무원으로서는 식품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주위에서는 제안자가 홍보하는 정부식품들과 국민영양교육 (질병 예방)이 한 시대의 팦송에 그치지 않나 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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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故 박정희 대통령 36주기 추모식 개최

故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1937년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3년간 재직 후,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년 뒤인 1945년, 광복군에서 활동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부수립 이후 국군장교로 복무, 1961년 육군소장으로 5·16 군사정변을 주도해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 됐다. 이후 1963년 대장으로 예편해 민주공화당 총재로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어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고, 1964년에는 베트남 파병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박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 ´ 하면 된다´ 는 국민적 자신감을 고취시켜며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15. 10. 26일. NewDaily( 뉴데일리), 오현지 기자 : 인터넷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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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 ............... 초등학교 교사


*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년 뒤인 1945년, 광복군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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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친일 행적

민족문제 연구소(소장 : 임헌영)에서 당시 신문을 공개했다.
“ 제목 : 血書, 軍官 志願 ” 이 그것이며 1939년 3. 31일 민주 신문(만주국에서 일본이 발행한 신문)에 났다.
“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 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 등본, 이력서, 교련 검증 합격증명서와 함께 ‘ 한 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한자와 일본어 병기) ’ 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 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박정희 훈도가 편지에 “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 (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 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박정희 대통령의 혈서 지원이 객관적인 방증으로 확인된 것으로 처음이다.

조세열 민족 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 친일 인명 사전 발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 게제.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 을 내는 등 정치 쟁점화 하고 있다 ” 며 “ 불필요한 논란이 정리되길 바란다 ” 고 말했다.

-- 2009. 11. 6(금), 한겨레, 홍석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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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軍官 ........... 현재 한국의 사정으로 해석해 보면 군의 업무를 보는 일종의 공무원이다. 예로써 중대규모의 병원에서 의사 외 병원에서 병원의 사무를 보는 것이 원무과 직원이듯이 군인들에 대한 사무를 보는 사람이 군관이다.
맞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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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 11. 2일(월) / 2017. 4. 6(목)
제안청 부산시청 (시장 : 서병수) - 시민참여 - 시민 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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