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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두부(頭富)면 ‘조포’ 라고 ?

작성자
안 * * *


[ 부산 이야기, 개시 기간 : 2018년 3월 31일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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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제 목 : 자살 그리고
제 목 : 한국정부 정신병동 아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 젊은이가 자살을 한 것의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제안자의 집안(사돈가)에서는 아버지(백씨-부인이 안씨)가 돌아가신 후 얼마 안되어 학교에 다니는 아들(장남)이 갑자기 다락에 올라가 자살을 했다. 자살하게 만든 실체는 누구였을까 ? 아버지는 직업이 군관(군무를 보는 일)이었다.
이후 교육자의 딸(부모 : 안씨 / 김씨)로 이혼한 이후 목을 메어 자살을 했다. 자살을 한 동기가 억울한 감정이었나 아니면 이를 유도한 어떠한 실체가 있었나 ? 모를 일이다. 당사자가 죽고 없으니....

제안자는 1989년 말부터 1990년경 이상한 상황이 있었다.
부산 금정구청 부녀복지계장(직무대리) 재임 중이었다.
상급자의 공무원(상관, 여성 공무원)에 ‘ 유방암이 왔다 ’(부산시청 이말선 국장이 직접)고 했는데 당사자는 아래 두 계장에게 ‘괜찮다’ 고 했다. 제안자는 과장이 죽고 나서야 그것은 괜찮은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박재춘 과장이 직장에서 직위해제가 되기 전, 주위의 어느 인사(모아 미용원 원장, 김씨)가 본인과 박경자 여사, 박재춘 과장을 점심시간 불러 밖에서 점심을 사 주면서 박재춘 과장께 “ 화장을 하지 말라 ” 고 주문했다.
이후 박재춘 과장이 - 수술을 않으니 - 직위해제가 되고 부녀계에는 본인과 -7급 고참 황성호씨는 진급해서 동으로 나가고 - 박경자씨(부녀 상담원)만 근무를 했는데 박경자씨가 근무지에서 한참동안 무단이탈을 하고 나오지를 않았는데 이에 대해 새로 온 과장(우00씨)이 그대로 방관했다. 지근 상사는 본인이므로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양.........
그 즈음 제안자는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을 마치고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업무에서 가사봉사원의 활동만 돕고 있었는데 (담당자가 무단이탈 중이라) 퇴근시간이 지나고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으면 전화가 와서 수화기를 들면 아무 말이 없이 끊어지는 수가 수회 있었다. 그 이전 부녀회의 업무도 과장과 부녀회장이 싸운다고 총무과 새마을계에서 맡고 있어 계내에 업무도 별로 없었고 당시 본인은 계장이었지만 ‘한량’ 이라는 계장의 직위에 별로 익숙해 있지를 않았다. 또한 그 이전 본인이 업무가 별로 없어서 행정관련 서적을 보면 박재춘 과장은 책은 못보게 하면서도 신문은 보게 했다.
직무대리를 달고 2년을 넘었어도 진급도 시켜주지를 않았다(서종수 구청장). 퇴근을 하고 가까이 친구가 스님인 사찰(범어사 대성암)에 가서 직위해제된 과장에 대해 언급하고 “ 사표서를 내고 절에나 올까 ” 고 농담을 하니 그 훨씬 이전에는 “ 쓸데없는 공부하지 말고 절에 와서 참 공부를 하라 ” 던 친구 스님이 그 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금정구청의 박승진 국장도 박재춘 과장이 직위해제가 되고 나서는 결재를 받으러 오라고 하고서는 국장실에 가면 꼼보 여직원(‘ 등대회’ 회원이라고 함)이 앉아 있었고, 그 이전(박재춘 과장이 직위해제가 되기 전)에는 행정대학원 졸업식에 가기 위해 외근의 결재를 내니 “ 대학원은 졸업이라 하지 않고 수료라고 하지 않나 ” 하고 물었다. 당시 박승진 국장도 행정대학원에 다닌다고 들었는데(후배) 그날은 수료식이 아니고 졸업식이었다. 부산대 행정대학원은 야간에 공부하는 특수대학원이라 과정이 2년 6개월 과정이므로 제때 논문을 쓰면 수료식이 아닌 졸업식을 할 수도 있다. 당일 졸업식 사진을 책임지고 찍어 주겠다는 남동생이 왔는데 한참 후 사진을 달라니까 모두 안 나왔다고 했다. 녀석, 당시 진짜 안 나왔나 ?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또한 직무대리도 분명 계장인데 박승진 국장은 본인을 ‘안양’ 이라 부르기도 했다. 제안자는 학교 때부터 남 앞에 있는 경우가 흔해서 이에는 이력이 나 있었다. (=경험을 얻어 익숙해 지다)
제안자는 공직에 별로 비젼이 없어서 사직서를 내었는데 사유는 일신상의 사유로 제출했다고 기억하는데 수리가 되지를 않아서 “ 나도 쉬고 싶다 ” 고 하니 이상한 병원(원장 : 박)에 가 있었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다. 어찌 그런 곳에 보낼 생각을 다 했나 ? 차라리 며칠 휴가를 내어 주던지...)
이에 대해 당시 안상영 부산시장의 허락이 있었던지 안상영 시장은 “ 실수 ” 를 했다고 하신 듯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안상영 시장은 당시 본인이 공직에 근무한지 17년이 되었으므로 좀 더 근무를 해서 20년 채우고 사직할 것을 바란 듯하나 본인은 나의 존재가 공직에 필수 요원인가 착각을 하고 꾸역 꾸역 공직 생활을 이어 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1999년 10월 제안서를 제출하고서도 그 접수증을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주어야 할 존재는 박지원의원이니 실체는 없지 않지만 그 사유가 미스터리다.
한국 정부는 정신병동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를 바로 다스려야 한다.

-- 2018. 3. 4(일) --

등록 : 2018. 3. 4(일)
부산시청 (시장 : 서병수) - 부산민원 120 - 시민 참여, 시민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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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제목 : 35세에 만난 사람

-- 망 박재춘 과장의 이해하기 곤란한 금전 부조리는 그 원인이 박정희 대통령 및 영부인이 받지 못한 ‘ 대통령 연금’ 에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두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은 - 괴상한 방법을 동원하여 - 현재까지 그 대통령 연금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기획원을 없애고 ......맞는가 ? : 2018. 3. 7, 제안자 안정은 보충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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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 제안자)

제 목 : 사망 후 보고서 ( 안상영 시장, 2000. 4. 16 )


상고 이유서 88쪽 ~ 100쪽 ( 2002년 7.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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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복지과장님의 사망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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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시장님으로 일하신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가 봅니다.
98년, 지나간 부산광역시장의 선거에서, TV에서 연일 얼굴을 내면서 공공연히 도왔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생각하니 왜 그렇게 열심히 도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박재춘 가정복지과장님(직무대리, 여, 행정6급, 부산대학교 법대 졸, 1988년 당시, 연세 47세경)께서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을 뜻밖의 소식을 접한 것은 2000년 1월 2일, 일요일, 구청에서 낮에 당직(일직)을 하면서 2000년 새해에 구청장실에 정초의 꽃꽂이를 하러 온 문선생님(문**, 부산에서 제법 알려진 꽃꽂이 선생으로서 서면에서 꽃꽂이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박재춘 과장님은 통도사에서 만난 분이라고 하였음)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아서 “거짓말이 아니냐 ?”고 하니, 병명은 유방암이라는 것이였고 절에서 올리는 제(祭 :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떠난 영혼이 이 세상에서의 억울한 일들을 용서하고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가도록 천도하는 불교적 의식)에도 갔다 왔다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언젠가 한번 들었어도 전연 몰랐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박재춘 과장님께서 직위해제가 되기 전, 사회복지협의회에서 개최하는 모임에 초청장을 받고 참가하였을 때, 행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는데 그 장소에 당시 제가 재학하고 있었던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과목을 강의하셨던 신**교수님께서 눈에 띄여, 일어서서 다가가 인사를 드렸더니 그때 신**교수님께서 함께 벌떡 일어서시면서 (그 큰 키에도 불구하고)저의 인사를 받아 제가 약간 의아해 하였는데 이를 눈치챈 이말선 국장님(당시 부산시청의 보사국장)께서 저를 스쳐 지나가면서 귀에다가 “안계장! 박재춘과장님이 유방암이란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과장님께서 전혀 내색하지 않아 그 동안(10여년 동안)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1.
근무할 때, 한번은 병원에 가신다고 하여 이** 직무대리 가정복지계장(당시 42세경, 본인은 35세경)과 함께 “과장님, 병원에 가셨다더니?”하고 여쭈었는데 “괜찮다”고 하시고는 별 말씀이 없었습니다.

2.
한번은 과장님의 얼굴에 붉은 열꽃과 같은 것이 눈에 뜨이도록 돋아 올라 이순애계장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가 걱정이 되어 “과장님, 얼굴이 왜 그렇습니까?” 하고 물으니 “한의원에서 이 열꽃이 밖으로 나와야지, 안으로 들어가면 치명적이라더라”고만 하셨습니다.

3.
겨울 어느 날, 절에서 좋다고 하더라면서 난로 위의 주전자에 마른 풀과 감초를 물에 넣어 푹 끓여서 차로 드시면서 가정복지과 직원들에게도 몸에 좋다고 하면서 먹어보라고 한잔씩 돌렸는데 그 차의 맛이 무척 향긋하고 좋았습니다.

4.
금정구 새마을 부녀회 업무가 별 것도 아닌 감정으로 과장실에서 부녀회원들을 앉혀놓고 공공연히 새마을 부녀회장(이**, 남편은 부산대학교 교수)을 욕하자 새마을 부녀회의 업무가 총무과 새마을계로 넘어가 버렸는데 그 이후, 부녀회장님을 복도에서 만나니 원래 많지 않던 머리숱에 머리 꼭대기 부근의 머리털이 한 웅큼 빠져 남자의 머리와 같아서 이상하여 물으니 “신경성”이라고 하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우리과장님과의 갈등으로 마음 고생을 하여서 그런 것 같아 걱정을 하니 “치료를 받으면 차차 나아진다”는 것이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가정복지과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아 계시던 박재춘과장님께 “이** 회장님의 머리 윗부분이 한웅큼 빠져있어 요즈음 병원을 다닌답니다. 신경성이랍니다” 하고 두분의 감정이 편해지도록 말씀드렸는데 “안계장은 나는 이렇게 있어도 괜찮고 부녀회장만 걱정이가?”하시면서 근간에 보기 드물게 화를 내어 제가 놀라 더 이상 말을 못하였습니다.

5.
박재춘 가정복지과장님께서 직위해제가 되기 전, - 이하 줄임


7.
금정구청이 동래구에서 분구되어 장전동 지하철역을 빌어서 업무를 시작하다가 현재의 구청 부지 옆의 빈 공터 위에 가건물을 지어 놓고 개청식을 하였는데, 이날 개청식장의 다과 준비를 저의 계인 부녀복지계에서 맡아 하였는데 개청식장의 꽃꽂이를 과장님과 잘 아는 분이라는 문선생님에게 맡기라고 하여 그렇게 하고, 그 대금 30만원을 과장님께서 달라고 하여 드렸는데(직원 부녀 상담원 박**) 문선생님한테 전하지 않아 구청장실에서까지 말이 들려오고, 또 그 본인이 개나리꽃 한 아름을 안고 와서 과장실 응접 쇼파 위에 꽃꽂이 해 주며, “이 꽃은 가정복지과장 취임 축하꽃이다. 개청식 날 한 꽃꽂이 대금 30만원은 주세요 ”하니 “구청 개청에 그 정도는 해 주어도 괜찮다”고 하며 기어히 그대로 보내자 “내 다음에 또 옵니다 ”하고 갔는데 돈을 받지 못하고 나가는 문선생님의 얼굴이 하얗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구청장 부속실의 비서(권** : 현 금정구의회 사무국장 비서로 근무함)에게 “ 문선생님이 과장님께 드린 30만원 돈을 받았답니까?”하고 물어보니 “글쎄요, 문선생님도 돈을 받지 않을 사람이 아니랍니다”고 하였고, 문선생님이 더 이상 말이 없고 찾아오시지를 않아 잊고 있다가 금정구 가사봉사원 후원회를 구성할 때, 과장님과 아는 분이고 또 절에 다니며, 주소지가 금정구라고 하여 가사봉사원의 후원회원으로 하여 줄 것인지 전화로 부탁드리니 쾌히 승낙해 주어 지금까지 금정구 가사봉사원 후원회원으로 계속(1989년 - 2000년)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8.
1989년 여름 당시 금정구청 가건물 청사에는 에어콘 시설이 없었는데 “우리 과가 덥기 때문에 선풍기가 필요하다. 부녀회장보고 “ 선풍기를 사 달라고 해라 ” 하여 (부녀복지계의 부녀 상담원, 박**씨를 보고 말씀하시는 듯 하였음) 저는 농담으로 듣고 넘겼는데(박**씨도 대답이 없었음) 어느 날, 금정구 새마을 부녀회의 총무(당시 부곡3동 동부녀회장, 장**)를 구청 앞, 중국집인 일성관(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음)에 불러내어 “할 말이 있다 ”고 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저와 직원(부녀상담원, 박**)을 동행시키는가 했더니 가서 보니 “선풍기를 3개 사 달라”는 것이였습니다. 부녀회 총무가 시킨 점심을 먹고 나서 하신 말씀이였습니다. 나오면서 과장님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며칠 후, 금정구 새마을부녀회장님인 이**씨가 복도에서 저를 부르며 나와 보라고 하여 나가 보았더니 “과장이 부녀회 보고 왜 선풍기를 사 달라고 하는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하며 과장님께 전하라고 하므로 그대로 말씀드리면 혹시 싸울까 하여 며칠 후, 과장님이 다른 말씀을 하신 끝에 “부녀회장을 며칠 전 만났는데 부녀회보고 선풍기를 사 달라고 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답니다. ”고 전하였습니다. 이미 새마을 부녀회의 업무가 총무과 새마을계에 넘어갔을 때였습니다.
새마을 부녀회의 업무가 새마을계로 넘어가고서도 부녀회원, 여성단체회원, 가사봉사원들이 구청 가정복지과장실에 자주 들렀는데 어느 날, 부녀회원들도 앉아 있는 자리(응접 쇼파)에서도 “부녀회가 봉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봉사 조직은 몸봉사를 하던지 돈봉사를 해야되는 것이라고 하던데(어느 남자 공무원들이 심심할 때, 할 수 있는 이야기) 부녀회장은 돈을 좀 내면 안 되나? ” 하는 말씀을 부녀회원들이 듣는데서 농담하듯이 너무 쉽게 하여서 제가 제자리에서 일하면서 그대로 듣기가 민망하여 “과장님, 부녀회장의 남편이 교수라고 하던데 국립대학교 교수는 공무원과 다름이 없는데 부녀회장이 무슨 돈으로 부녀회에 돈을 냅니까 ?” 하고 말씀드리니 그냥 듣고만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리하였던지 그 이튿날 아침, 계장회의 때 앉으니 * “ 감 좀 잡아라 ” 하고 나무랐으나 부녀회장과의 갈등 탓이라고 생각하였고, 이후 여성단체 회원들에게도 “ 부녀계장(본인)이 이** 회장편이다”라는 말씀을 한다고 들려왔습니다.


9.
어머니 합창대회가 각 구별 경쟁으로 있었는데 대회에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옆의 가정복지계가 도왔는데 합창 단장을 두고서 고민하고 있을 때 합창단원들이 임원장(여, 임**씨, 사회복지법인 **원의 원장, 가정복지과장실의 응접 쇼파를 넣어 준 사람이라 하였음)을 하기로 합의가 되었다고 하여 과장님도 아셨고 국장님께도 결재를 받으러 갈 때, 구두로 보고도 드렸는데, 어느 날 부곡3동에 살면서 노래를 잘 한다는 여자 한 사람이 과장실로 찾아와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을 금정구 어머니 합창단의 단장을 맡겨주면 구청에 피아노 1대를 사 준다고 하고 돌아갔는데 과장님께서 “ 안계장, 방금 왔던 여자가 노래를 잘한다고 하는데 자기를 합창단장으로 해 주면 구청에 피아노 한 대를 기증하겠단다 ” 고 하였으나 합창단장을 정하는 것은 부녀복지계장이나 가정복지과장이 정하는 것이 아니고 합창단원들이 스스로 정하며 당시 합창단장이 정해졌으므로 귀에 담아놓지 않았는데 이에 대하여 당시 합창단장으로 내정된 임원장이 노하여 부산시청 감사실에 과장님의 돈에 대한 비리를 신고하였다는 말이 밖에서 들렸으나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당시 임원장은 여당인 민주 정의당 금정구 지역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다는 말도 들렸음 )

10.
박재춘 과장님은 자신의 진급이 늦은데 대하여 (1988년도 46세경, 6개월전에 주사로 진급하여 6급의 경력이 부산시에서 가장 적어서 동래구에서 분구가 된 금정구에 발령을 받았다는 말이 들렸음)한번은 이말선 국장님을 탓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다소 공감이 갔습니다.
업무에서는 부산진구청에서 오래도록 호적업무를 보아왔다는 말이 들렸고, 부녀회의 업무가 처음인 듯하였으며, 돈에 대하여는 소문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또 저 개인에 대하여는 업무와 상관없이 감을 못잡느니 하면서 구청장 사모님(당시 서** 구청장님)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나 관내 저를 익히 아는 여성단체회원들이 있는 앞에서도 가리지 않고 만만한 동생 대하듯 하고 “안계장은 뭘 모른다”는 핀잔도 더러 하자, 어느 날은 구청장 사모님께서 그냥 듣기가 곤란하였던지 “과장이 너무 그렇게 하면 안계장이 주눅 들어요” 하고 충고하였습니다. 저는 과장님의 성격이 차차 알려지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하며 문제삼지 않았는데 당시 가정복지계의 주무였던 박도문씨(남, 당시 고참 행정직 7급, 현재 5급으로 금정구청 ?과장)가 보기가 딱하였던지 부녀복지계를 향해서 “다음부터는 과장이 이유없이 잔소리를 하면 같이 대들어 따져 보라. 그러면 좀 덜할 것이다”고 하였는데 저는 당시 계장이였으므로 업무와 관련이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여서 대응하지 않았고, 저의 계의 직원인 부녀 상담원 박**씨가 한번은 과장님의 엉뚱한(불합리한)꾸중에 크게 맞고함을 치며 말대꾸를 하였는데 과장님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맞고함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속이 상하는지는 아시는지 한번은 “ 안계장은 시집을 안 가서, 생속이라서 ”하는 말도 하였습니다.
어떻던 모자라는 직원에 새마을부녀회의 업무도 새마을계에 빼앗기고 과장님은 부녀복지 업무에 대하여는 불평이 없으면서도 사소한 일들(과장님이 평소 앉는 응접 쇼파의 자리에 앉아, 찾아 온 손님과 마주보고 대화 중인데도 자리를 옮겨 앉으라고 하는 등)로 속이 상하여 당시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에 같이 다녔던 여학우한테 털기도 하였는데 그녀는 제가 대민 민원부서에서 오래도록 근무하여 과장에게나 관내의 여성, 직장의 직원들에게 깎듯이 대하여 그렇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상대방에 따라서 말도 낮추고 무게도 좀 잡아 보라는 것이였습니다.
저의 이러한 속앓이와 가정복지과의 분위기가 소문이 났던지 - 이하 줄임

박재춘 과장님은 그리하면서도 업무에 대하여는 별로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였고 (가정복지계와 부녀복지계가 모두 열심히 하기도 하였지만) 업무와 관련된 행사를 끝내면 “다 욕봤다”하셨으며 또 저 개인에 대하여는 “돈 문제를 분명하게 처리한다”고 한번 말씀하셨는데(가정복지과 직원들이 함께 온천장에 한정식을 먹으러 가는 차안에서) 그것은 새마을부녀회의 업무가 새마을계(총무과)에 넘어가고서도 새마을부녀회장님과 부녀회 총무가 함께 가정복지과에 들어와서 회장님이 제 책상 위에 돈봉투를 놓으면서 “가정복지과 직원들이 모두 수고하므로 과장님과 함께 식사 한끼라도 하라”는 것이였습니다. 제가 “부녀회에 무슨 돈이 있습니까? ” 하면서 일어서서 돈봉투를 들고 돌려주려고 가니(선풍기를 사 달라고 과장님이 억지를 쓴 적도 있어서) “이번 월례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다”면서 손을 저으며 도망을 가버려서 저를 지켜보고 있던 과장님께 그 봉투를 드리며 “가정복지과 직원들이 고생한다고 식사라도 함께 하랍니다”하고 드리니 “안계장이 갖고 있다가 내가 달라고 하면 그때 직원들 식사나 함께 하자”고 하며 보관하고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마땅히 보관할 캐비넷도 없어 저의 직원(부녀 상담원, 박**)에게 맡겼는데 그 이후, 가정복지과 직원 모두와 함께 온천장에서 훌륭한 한정식 식사를 하였는데 그것이 그 돈인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 이하 줄임

11.
박재춘 과장님께서 직위해제가 된 후, 어느 날 국장실(박승진 총무국장)에 결재를 받으러 가니 “ 안계장은 상관보다 조직이 중요하냐 ” 고 물어서 저는 박재춘 과장님의 직위해제와 관련하여 나를 원망하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또 대학원의 논문 작성 관계로 필요한 시기에 맞추어 휴가원(1989년 하계 휴가)을 내니 “상관보다 먼저 휴가를 가도 되느냐 ?” 면서 결재해 주셨고, 1990년 2월,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근무상황부에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이라고 적어가니 “대학원은 졸업이라고 하지 않고 수료라고 하지 않느냐? ” 면서 결재해 주셨는데 결재 때마다 다소 못마땅한 듯하여 뭔가 나를 오해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았으며 또 그렇다고 하여 박재춘 과장님의 흉을 널어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박승진 국장님은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재학 중이라는 말도 들렸습니다.
또 어느 날은 박승진 국장님의 결재를 받기 위해 국장실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결재가 된다고 하여 국장실로 가니 벌써 손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가셨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국장실에는 부산시청에서 근무하는 듯한 다소 낯이 익은 7급 여직원이 국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도 국장님과 만나기로 되어 있는데 점심시간 전에 박승진 국장님께서 식사하러 가심으로써 만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국장님과는 부산시 산하 천주교도들의 모임인 “등대회”의 회원으로서 알고 지낸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녀는 얼굴이 많이 얽은 여직원이였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하고 그날 생각하였습니다.

12.
박재춘 과장님께서 직위해제가 되기 전, 부녀복지계의 유일한 직원이였던 박**씨와 저를 함께 대동하여 점심 식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고(관내에 거주하면서 동래구 관내에서 ** 미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와 함께), 또 한번은 저만 데리고 두구동에 사는 어느 부유한 보살님의 집에 가서 햇쑥떡을 먹고 왔는데 그 보살님은 경칩(24절기의 하나로서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 때에 움터 오르는 햇쑥을 뜯어서 떡을 해 먹으면 사람한테 좋다고 하면서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뜯어서 만든 떡이니 많이 먹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보살님은 통도사에 다니는 보살님으로 자식이 없으며 자신의 많은 돈으로 남의 자식들을 공부를 시키는 신심이 돈독한 보살님이라고 하였습니다.

13.
과장님이 직위해제가 된 후, 여성대학을 개최하는 어느 날, 오른 손에는 뭔가를 들고 왼손으로 가정복지과의 둥근 문고리를 쥐고 열고서 닫은 후,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어 손바닥을 보니 왼쪽 집게 손가락이 있는 바로 아랫부분의 살갗 안쪽에 갑자기 피가 터져 고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구청과 가까운 부곡동에 있는 *** 내과에서 임상병리사와 병원의 사무장으로 있는 통신대학 가정학과 후배(조**, 여, 현재 부산광역시 보건환경 연구원으로 근무, 이학박사)에게 들러 물어보니 “잘못하면 관절염이 올 수도 있으니 신경 욋과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라는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박재춘 과장님께서 직위해제가 되었던 터이라 “우리 과장이 돈문제로 직위해제가 되어 골치가 아프다”고 하니 “상관이 직위해제가 되면 그 아래의 사람이 과장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여 “우리는 아직 급수가 7급이므로 과장이 될 수도 없고 입장만 곤란하게 되었다”고 하고서 돌아와 이후 시간을 내어 구청 가까이에 있는 금정 욋과(원장 : 박)에 가서 피검사를 해 두고 또 며칠 후, 결과를 알아보니 이상이 없다고 하면서 “이런 증상이 있으면 피검사를 자주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4.
박재춘과장님께서 직위해제가 된후, 과장님의 짐이 계속 그대로 있어서 이** 계장과 함께 짐을 싸서 부산진구 초읍동 관내에 산다는 과장님의 댁을 동사무소에 가서 물어서 찾아가니 “방금 구청장 사모님께서 왔다 갔다. 자주 오신다”고 하시고 그리고 “걱정하신다”고 하였는데 왜 직위해제된 과장님의 댁을 구청장 사모님께서 그것도 자주 오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15.
박재춘 과장님께서 복직(?)된 후, 제가 세무과에서 7급 평직원으로 근무하는 저를 부른 후, “내가 이** 계장 때문에 죽을 뻔 했다”는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시면서 -- 중간생략 --

16.
직위해제가 되었던 박재춘 과장님께서 복직하여 금정구청 시민과 민원대기실의 복판에서 민원안내를 하고 있을 때, 저는 여전히 7급으로 진급도 못하고 (7급으로 진급한지 10년째, 가정복지계장이였던 이**애 계장은 6급으로 진급하였음) 세무과에서 국고인 교육세 통계업무와 과오납금 환불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한번은 총무국장실(윤석천 총무국장)에 통계업무에 대한 결재를 받으러 가니, “박재춘 과장이 요즈음 이** 계장을 욕하고 다닌단다”라고 하셨는데 저한테는 유감의 감정이 없고 “이**계장 때문에 내가 죽을 뻔 했다”는 비슷한 말씀을 하고 다니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박재춘 과장님의 그 말씀과 이말선 국장님의 “ 박재춘과장이 유방암이란다”라는 귀뜀의 말씀이 오랫동안 제 귀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2000년 4월 16일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기획감사실(행정자료실)
지방행정 주사 안정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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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글씨는 보충
* 성명의 일부는 ** 처리 : 개인 정보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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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 좀 잡아라 ”......... 어머니 윤씨 형제들의 당뇨와 어머니의 당뇨 발병 (1985년 2월 이전) / 이후 어머니의 직장암 수술(1987년) (※ 부산시청에는 윤순자 국장이 근무하고 있었으며 남편은 박씨로 같은 공무원 )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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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제목 : 조포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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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조포 란 ?


공직에서는 세칭 두부(?)를 ‘조포’ 라고도 한다.
즉 ‘ 조물주도 포기했다 ’ 는 뜻이다. 부산 동구 소재의 한얼신경정신과 입원실( 원장 : 박희주) / 부산 금정구 두구동 소재의 동래 병원 (원장 : 박) 등을 일컫는데 이도 국민들이나 공무원들이 겪어 보아야 ‘조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제안자의 아버지가 입원한 부산 금정구 청룡동 소재의 금샘요양병원이 ‘조포’ (전 김대봉 산부인과 원장)가 운영했던 병원이다. 신종의 조포 병원이다. 말만 전해 왔던 옛 산부인과 의사들의 나쁜 행태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전두환 정부에서 당시 국정사업으로 ‘가족계획사업’ 을 벌인 것도 이에 연유했다는데.....
금정구청 가정복지과장 (여성)에 유방암이 오고 이로써 본인에게 한참 후 한달에 생리가 두 번 있은 것 그 자체를 두고 볼 때 이는 ‘여성 폭력’ 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판단이다. 그래서 김영삼 정부 시절, 김덕룡씨는 이를 ‘ 절반의 실패’ 라고 했다. 박재춘 과장의 금전 부조리의 그 원인이 대통령의 연금에 있었다고 해도 대통령 연금 자체가 남성들이 만들고 또 남성들에 의해 중지되어야 할 사안인데 왜 여태껏 그대로 두어 왔나. 한심한 한국 남성들 !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여성들만 욕할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남성들은 어찌 그리 잘 뭉치는지..... 지나고 보니 안팎이 모두 다 같은 놈들이다.
제안자가 한국에서 왜 여태껏 혼자 살아왔는지 알 만하네 !

영양제이면 영양제라던데 ..... 제안자는 안락병원을 퇴원한 안동수 아저씨한테서 처음 이 말을 전해 들었다.

영양제(永孃除)이면 한국인들은 영양제를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고요 ?
백세건강(사자성어)이란 말과 같다고요 ?

-- 2018. 3. 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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