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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갑질인가, 미친개의 행위인가 ?

작성자
안 * * *


- 경남 거창 양민학살 사건 /경북 경산 양민학살 사건 /제주도 양민학살 사건 -

- 김대봉 원장(금샘요양병원 - 금정구 청룡동)이 김종만(금정구 청룡동 거주)씨의 교통사고와 관련해 병원에 입원한 제안자 아버지 (안태화 - 금정구 청룡동 거주)에 수면제를 먹게 한 것(2016년 1월 - 약물의 오남용)은 세칭 갑질이 아니고 미친개의 행위(아무나 무는 개로 비유) 라고요 ? 김대봉 원장은 전입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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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

제 목 :
- 공무원이 오래 근무하면 감사받을 것이 많나 ?
- 김씨의 갑질인가 ? (약물의 오남용 )


오래 근무하거나 업무를 많이 보면 감사 받을 것이 많다고 한 이는 동래구청의 모범 공무원 김약신씨다. 동래구청에서 감사 업무를 볼 당시 본인에게 해준 말이다. (동래구 연산8동에서 행정7급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업무를 보고 있었던 본인에 대해 긍정적인 말로써)

박정희 정부,
김현옥 부산시장 (전직 군인 - 1962년 4월부터 1966년 3월)까지 부산시장으로 근무) 당시
부산시 동래구청장에 양00씨가 있었는데 박정희 정부, 김현옥 부산시장 당시 “ 이상하게(? - 정신과적인 요인) 물러났다” 고 했다.
당시 그 양구청장이 부산 현 금정구 청룡동의 주민들과 인연이 있었던지 아버지(안태화)가 공직(부산 동래구청)에 들어가 근무하는 나에게 일부러 일러주었는데 구체적인 말은 없었다. 박정희 정부 당시에도 동래구청장은 부산시장이 발령했으며 대통령이 시도지사를 발령한 중앙집권체제의 한국이었다.

부산 동래구에는 이전부터 구 시대의 유물이었던 이중창의 안락병원이 있었고 그곳에는 부산시의료원 노숙자 담당 김홍만씨가 - 나의 오촌 아저씨 노숙자 안동수가 수안파출소 박재현 경관이 안동수의 신변 인계서에 주소 추적을 않고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 4조 위법) 부산시 의료원에 2002. 7. 10일 인계했다고 - 노숙자 안동수를 그 이튿날 이중창의 행려정신질환자 병원이었던 안락병원( 원장 : 양헌씨) 에 보내었다. 당시에는 노숙자 쉼터도 문정수 부산시장 당시 처음 생겼고 또 부산시에는 시립 정신병원(원장 : 오00씨 )도 있었다.
부산시 의료원 김홍만은 안동수를 이튿날 (2002년 7월 11일) 부산시 동래구 소재의 행려정신 질환자 병원(이중창)이던 안락병원에 보내기 전, 안동수의 여동생(물리 치료사)를 만났다고 했으나 여성인 출가외인이었던 누나(안*선)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가 보았다.
당시의 안락병원은 원장이 * 양헌씨였다.
안락병원에는 의사로 정향균 의사가 있었는데
의사는 노숙자 안동수를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 4조에 의해 응급 치료 후 밖으로 보내어야 했으나 4년동안 2중장의 안락병원에 강금 보호하였다.
제안자가 그 이전인 1996년 6월 부산 금정구청 사회복지과 의료보장계장으로 가니 행려정신질환자 병원 등에는 주민등록번호 대신 의료보호수첩의 번호를 부여해서 정부의 재정(국비 + 시비)인 보험료(즉 병원비)를 사용토록 공문을 보내고 있어서 ‘ 병원이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 4조’ 를 알도록 ‘ 해당 법령을 복사해서 보내라’ 고 아래 공무원(행정 8급 김진길)에게 지시를 했는데 처음 몇 번만 보내고 보내지를 않아서 재차 지시하고 나무라니 밖으로 나가버리고 이행을 않았다.
(6급 계장 : 안정은 / 5급 과장 : 김이경 / 4급 국장 : 문상열 /
부구청장 : 박승진 /구청장 : 윤석천 )
당시가 김영삼 정부여서인지 금정구 관내의 행려 정신질환자 강금 시설(인권문제로 지탄을 받았던 1970년대의 사회 복지시설)이었던 자혜정신요양원은 금정구 장전동에 소재했는데 제안자가 의료보장계장으로 발령을 받아갈 때는
이미 해체하고 세명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 제안자가 직무와 관련해서도 세명병원 (이전의 자혜정신요양원장 : * 김문곤씨)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고 한 이유다.
이후 금정구청 총무과 상황실(실장)에서 제안 건의를 하면서
‘ 부랑인(=노숙자)시설의 확충과 요양원 건립’ 이란 제안서를
김영삼 정부 말기(1997년 1월) 에 제출하고 이후 (2002년 7월) 나의 오촌 아저씨 안동수가 안락병원에 보내어져 4년간 입원해 있어서도 안락병원의 정향균 의사에 대해 제안자가 과도하게 언급치 않은 것은 상기의 이유였다.

참고로 노숙자의 업무를 부산시청에서 관할구청으로 업무를 내려 보낸 것은 김영삼 정부라 들었다 (부산시청 노숙자 담당자 : 차00씨)

당시 제안자 아래 근무했던 박학민씨(김진길씨와 같이 근무 - 박근혜정부에서 간경화가 온 듯한데 )는 제안자의 업무명령을 듣지 않았으며 당시 박승진 부구청장도 윤석천 금정구청(초대 민선구청장 ) 에 대해 항거를 하고 공공연하게 윤석천 구청장을 욕했는데 이는 ‘노숙자의 문제’ 가 공직 내부에서도 민감한 사항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상기 김진길씨 및 박학민씨가 본인(의료보장계장)의 업무(박학민씨 : 본인의 지시- 계획서에 의한 )를 이행했다면
이후의 안동수의 문제는 예방할 수 있었다.
그로써 이후 노숙자 문제(즉 재정적 문제)는 그 보호비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하면서 잠재워지는 듯했지만 노숙자 문제는 돈문제보다도 인권적 문제가 더 컸다.
안동수 死후 제안자가 부산시청에서 생활수급의 업무는 - 이하 줄임



- 김병민 약국에서 지은 감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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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민 약국이 자리한 곳의 건물주는 금정구 청룡동 지역 유지인 양00씨의 건물이다.
* 김병민 약국 : 1995년 ~ 2000년경 상기에서 약국 경영
* 노숙자 안동수를 2002년 7월 11일 동래구 안락병원(원장 : 양헌씨)에 김홍만이 보냄

* 안상영 부산시장 자살 : 2003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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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김영삼 정부에서 먹은 음식( 1995년 ~ 1999년 ) 아모레 설록차 포함, 금정구청 구내식당에서 먹은 점심에서도 )에서 부정 생리가 자주 보여서
금정구청 총무과에 이를 알렸다. 구내식당 등 공무원들의 후생 복지 업무(공무원 의료보험 업무 포함)를 보는 부서가 총무과에 별도로 있어서였는데 이에 대해 총무과에서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자주 먹는 여성 공무원들에게 설문서(구내 식당 반찬의 가짓수 및 밥 값의 인상 운운 )를 돌리면서 기타 건의 사항을 받았는데도 아무 말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당시 설문서에는 제안자에 대한 부정 생리에 대해 언급함이 없이 설문서를 받으니 그런 응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정생리는 여성들에게서 잘못 운운하면 자궁적출의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 즈음 제안자의 조카(남)가 부산 금정구 소재의 청룡 초등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의 신체검사(검사자 - 박00씨)에서 오줌에 피가 보였다고 했다.
(이로써 부산 백병원에서 입원 치료 : 담당의사 정00씨)
그 이전 나의 올케(강)는 금정구 청룡동(팔송정)의 김병민 약국에서 조카(남)에게 감기가 와서 약국에서 감기약을 지어 먹였다고 했다.
김병민 약국(위치 : 지역유지 양00씨의 건물)은 감기약을 약국에서 짓는 것이 위험의 요인이 되면 가까운 병원에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지를 않았다.

- 이하 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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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헌씨...................................

* 김문곤씨............................ 이후 한나라당의 공찬을 받아 금정구청장으로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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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 2. 25(일)
제안청, 부산시청 (시장 : 서병수)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 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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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씨 집권 및 박정희 정부시 역대 부산시장 (1961년 ~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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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 : 변재갑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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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4월 ~ 1966년 3월 ( 4년) : 김현옥 시장
1966년 3월 ~ 1969년 4월 ( 3년) : 김대만 시장
1969년 4월 ~ 1970년 4월 (1년) : 김덕엽 시장
1970년 4월 ~ 1971년 6월 ( 1년 2개월 ) : 최두열 시장
1971년 6월 ~ 1977년 7월 ( 6년 1개월 - 부인 병사) : 박영수 시장
1977년 7월 ~ 1980년 1월 ( 2년 6개월) - 최석원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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