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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해방 후의 사화

작성자
안 * * *


- 해방 후의 사화 : 한국 국회의 소급 입법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의 부정선거를 사유로 최00내무부 장관 등을 사형 / 이후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부산 동래구, 부산시의 여성 공무원들의 가족 및 친인척 살해 (연탄가스 중독, 건강진단 오진, 노인요양병원의 약물 오남용, 기타 등등 -

- 이제는 공직안의 민주화가 요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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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 영양사 / 시인 )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제안자가 왜 이순신에 비유가 되는가 ?


- 사학과 관학 -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요즈음 조선시대 서원 (소수서원, 사액서원, 도산서원, 덕천서원 등)들이
다시 정비가 되고 그곳이 기념관으로 건립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 남명 조식 선생의 덕천 서원(경남 지리산 부근 )도 그 하나인데
조식 선생은 남명기념관(산청군 덕산)이 새로 건립되어져 있었다. 길러 낸 제자가 대단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요즈음으로 비교하면 서울의 유명한 종로학원쯤 될 듯 싶다.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로 나아갔다면.....
조선시대의 서원들이 조선말 개국으로 사립 및 공립의 학교로 또 일제 강점기에도 학교가 많이 생겼지만.....그렇다면 여학교(예 : 동래 여중고 / 부산여자 상업고교)가 사립이고 남학교(동래 중고등학교 / 부산상업고교)가 공립이 많은 것도 이유가 있을 듯하다.

0. 남녀 공학 - 전인교육, 인문교육
정부는 이들 학교를 공립으로 전환키는 곤란할 것이지만 남녀 공학으로 해야함에서는 더 주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학문의 중심이 남성 중심으로 흘러서도 안될 것이다.
그리하자면 한국의 국립대가 지금처럼 서열이 있고서는 전인교육, 인문교육은 요원해 질 것이다.

0. 실학 과목 설정 - 한복바느질, 목공, 독서지도
고교(1학년 과정)에서 여학생들은 자신의 한복 한 벌 쯤은 손 바느질로써 지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고 남학생들은 각도 책상 하나쯤은 자신은 손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요리실습은 남녀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리하자면 교육부는 초중고교의 정규수업에서 - 이전 특별활동 / 방과 후의 보충 수업에서 벗어나 - 실생활에 필요한 과목 (실학)을 과정에 맞추어 넣고 강사는 들이면 된다. 상기 외 독서지도도 넣어 초등교의 학생들이 일찌감치 책 읽기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영양교육은 단체급식소의 영양사가 맡을 수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규제 혁파는 이에도 해당이 될 듯하다.
그렇다고 교육에서 옥석을 가리지 말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0. 한자 교육과 예절 교육 - 초등과정
한자는 중국, 일본, 동남아에서도 아직 많이 사용하고 있고 특히 관공서(행정부 및 사법부)에서는 한자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기관청이라고 해서 전문 용어가 없어지라는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일본의 고유언어는 그 수가 적어선지 한자를 많이 사용해서 초등교 과정부터 한자를 철저히 가르치고 있는 듯했다.
컴퓨터 시대라 해도 분야에 따라서는 의사소통에 한자어가 필요하므로 초등교육과정에 ‘ 한자 및 예절 교육’ 을 넣고 강사를 들여 뿌리 교육을 시켜야 한다. 낡은 것은 버리고 취할 것만 취해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 * 뉴에이지 문학인 ‘ 봄 문학 기행’ 2018. 3. 3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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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에이지 문학........... 계간지 (정인조 / 부산 동래구 충렬대로 )

-- 2018. 4. 1(일) / 4. 2(월)--
등록 : 2018. 4. 1(일)
부산시청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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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 4. 2(월)
부산시청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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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 조식 선생.......... 남명 조식 선생은 왜 정부의 부름(관직을 줌)에 응하지 않고 초야에 남아 사학으로 인재를 그렇게 많이 갈러내었나 ?
한국사에서 사화(선비들이 입은 화)가 4개 있은 것이 연산군(1494년)에서 명종(1567년)간 60여년 동안이다. 즉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 사화가 그것이다.
상기 남명 조식 선생이 정부의 부름을 사양하고 벼슬로 나아가지 않은 것은 을사 사화에서 조광조가 조정에서 제거된 탓일 듯하다. 이로써 조선에서는 관학이 아닌 사학이 번창하게 되었는데 상기 남명 조식 선생의 덕천서원도 그 하나이다. 명종의 뒤를 이은 선조(1567년 ~1608년)에서 일본이 조선을 침입한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래서 제안자가 이순신 장군에 비유가 되는가 ?
참고 첨부 파일 : 제안서 서문 / 제안자의 심사숙고 (2018. 6. 16일 제안자 안정은 보충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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