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 영양사)
주 제 : 식품 안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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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서 :
한국전통식품 및 전통양념 제조와 유통에 따른 정부 규제에 관한 고찰과
그 발전방향 -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 1999. 10. 20, 김대중 대통령 / 안상영 부산광역시장 / 윤석천 금정구청장 )
제안자 :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기획 감사실 (실장 : 임병철 )
지방행정 주사 (6급), 안정은 (安貞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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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역사 기행 - 일제 강점기 사할린 징용 무연고 희생자 추모관 준공 기념식에 다녀와서
내 용
---------- 광 복 73 주년 -----------
일제 강점기 사할린 징용 무연고 희생자 추모관 기념식
1. 일시 : 2018. 8. 30(목), 16 : 30
2. 장소 :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스크사할린 녹산원 내
3. 주최 : 부산 우리민족 서로 돕기 운동 / 한겨레 통일 문화 재단
4. 주관 : 부산 우리민족 서로 돕기 운동
5. 후원 : 한겨레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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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정책 등으로 러시아 남사할린으로 징용간 4만여명의 조선인들은 1945. 8. 15일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 ☆ 1 : 해방 후의 풍경 - 돌아오네, 돌아오네 )
사할린의 남부인 남사할린은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점유해 왔는데 일본은 이곳에 탄광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자 일본 본토와 조선에서 노무자들을 동원하면서 조선인도 강제 동원이 시작되었다.
사할린은 일본의 위쪽에 위치해 있으며 또한 러시아의 동해 끝에 자리한 섬지역으로 이곳은 태평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어졌다.
조선인으로 징용간 상기 4만여명은 탄광 등에서 노역으로 시달리다 죽어가서 연고가 없는 고혼이 되어 이를 위해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 에서는 이들이 묻힌 사할린의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묘역에 합동 추모비를 건립했다. 이 비문의 앞뒤에는 작가 한수산씨가 쓴 200자 못되는 비문이 새겨졌다.
또한 1945. 8. 15 해방 후 조국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사할린의 코르사코프 항구에서 귀국선을 기다리다 지친 조선인들도 항구 주위에 흩어져 살다 죽어 이들을 위해 코르사코프 항구에는 망향탑이 새로이 세워져서
사할린을 방문한 우리 일행들은 상기 두곳에서 참배를 하였다.
2차세계대전에서 패하고 항복한 일본은 러시라 사할린의 코르사코프 항구에 귀국선을 보내어 일본인과 일본인의 가족만 싣고 남은 조선인들은 이 후 배를 다시 보내어 싣고 간다고 하고는 배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상기 일제강점기에 징용된 무연고 희생자가 죽어 묻힌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 묘역에는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그 나무들 사이에 묘역(무덤 + 묘비)이 있었는데 이 지역은 사할린시의 땅(시유지)라고 한다.
러시아 정부는 수년 전부터 80곳의 기관장을 민선으로 뽑고 있는 듯한데 사할린은 러시아 영토의 0. 8%에 해당된다고 한다. 사할린의 국토는 현재 자작나무와 곧게 자라는 사철나무인 침엽수의 나무가 무리지어 교대로 심어져 있고 빈 땅에는 잔디가 심어져 온통 녹색의 땅이었고 곳곳에는 인공 연못도 있어서 국토관리가 잘 되어 있었는데 이는 러시아 정부의 노력이었는지 아니면 기후가 해양성의 섬지역이라 비가 잦아 그런지는 알 수 없었으나 높은 산도 없어 일본이 과거 이 지역을 탐했던 이유는 충분히 엿보인다.
이곳의 한 지역에는 최근 한국의 아파트(apartment) 건설 사업가 한덕수 대표(SSD 그룹회장)가 고급의 아파트 1동(화물 및 사람이 탑승하는 2개의 다른 승강기 / 5인이 같은 층에 살 수 있는 복도층의 16층 건물 / 아래 분리된 상가동 건물과 주차장 등을 갖춘)을 갓 지어 놓았고 그 바로 주위에도 몇동의 아파트를 지어 놓았는데 기히 분양된 아파트 건물 앞에는 주차장이 있었으나 주차난은 여전했다.
그리고 일본에 의해 징용된 조선인들이 노역된 브이코프 탄광은 현재는 중지된 탄광으로 일본지명은 나이붙이 탄광이며 이는 일본 미쓰비시광업주식회사 소유의 탄광이었다고 한다 (☆ 2 : 박정희 정부의 글로벌 뇌물)
상기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에서 그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고 이 운동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듯한 리인수씨는 일제강점기 용된 1인의 아들(2세)로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2018. 8. 30일 자 있은 ‘일제 강점기 사할린 징용 무연고 희생자 추모관 준공 기념식’에서 사회를 맡은 상기 리인수씨는 역사적 산증인의 2세인 셈이다. 이 날 개관식에는 스님 한분과 신부님도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추모 국악 공연도 있었다.
제안자는 한겨레문화재단으로부터 행사 보름 전쯤 연락을 받고 이 역사기행(2박 3일)에 쾌히 따라 나섰는데 참가비가 백만원이었다.
일정은 상기에서처럼 부산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으로 출발, 2시간 정도 비행해서 사할린공항에 도착해 첫날은 추모 기념관 개관식에 참여해서 식사 후 호텔 (통나무로 지은 벨카 호텔)에서 묵고 이튿날은 코르사코프 항구의 망향탑에 참배하고 밖에서 점심 식사 후 곧장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묘역에 세워진 합동 추모비에 참배한 후 마지막으로 브이코프탄광을 직접 둘러보았는데 가는 길이 험하고 다소 멀어서 일행들이 버스에서 많이 졸았다. 버스로 가는 길가에도 대부분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으나 시베리아 벌판처럼 나무가 없는 벌판에는 곳곳에서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따라서 호텔 아침 식사에는 속이 달리 없는 모닝빵, 우유 버터, 치즈, 우유(전유), 채소류와 마요네즈(성분 : 계란 노른자 + 식용유 + 식초), 삶은 통계란이 메뉴(식단)로 구성되어져 있었고 과일들이 후식(디저트)로 놓여져 있었으며 커피는 100% 과립 커피, 설탕, 뜨거운 온수, 흰 전유가 따로 놓여져 있어 이튿날은 이 모닝 커피를 만들어서 식사 후 마지막에 한잔 마셨는데 그 설탕에서는 이상 증세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사할린을 3일간 여행을 하면서도 한국의 여행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 즉 여성들이 젤리나 사탕을 버스간에서 일행들 전원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은 사할린의 여행에서도 여전했다.
일행이 이틀간 모두 묵은 통나무집 호텔(벨카 호텔)은 모두 통나무로 지어졌는데 그 나무가 자작나무였는지 곧게 자라고 있는 사철나무 침엽수(소나무처럼 잎이 뾰족해서 물이 부족한 고산지역이나 비가 없는 겨울철에도 잎이 달린)인지 러시아 말을 모르는 제안자는 물어 볼 수도 없었는데 짐작컨대 그 호텔은 소유주는 개인의 소유이나 상기 현덕수 대표처럼 자신의 재력으로 귀감이 될만한 호텔을 지어 운영하는 지역의 인사인 듯했다. 통나무집은 서구의 소설이나 수필에서도 등장하는데 이런 집을 뜻하는가 보았다.
상기 중요 여행 경로 외에 러시아 정교회성당, 사할린의 향토문화 박물관을 둘러보았는데 모두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많아 꿀을 채취하는 추세는 한국의 사정과도 다르지 않았고 묘역에도 인공의 꽃(천으로 만든 꽃)들이 꽂히어 있는 것도 오늘날의 지구촌들의 공통된 풍습인가 보았다.
그리고 향토 박물관에는 유물 뿐만 아니고 지역의 인사들인 듯한 얼굴 사진들도 많이 붙어져 있었는데 이는한국에서 지방자치제 실시 후 지역을 빛낸 인물들을 찾는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일 듯하다. 지역을 빛낸 인물들에서 해방 후 한국인들이 지역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한 공적들이 뚜렷하지 못하고 드러나지 못한 것은 해방 한국의 역사적 흐름이 역류가 되어 이들 지역의 인사들이 지역을 위해 일해 볼 뚜렷한 기회를 얻지 못한 것에 일차적 원인이 있을 듯하다.
2박 3일 여행하는 동안 호텔식 외는 한곳에서 식사를 한 것이 안정감이 있어서 좋았고 마지막 날 사할린을 출국하기 전의 점심은 어느 대형의 쇼핑몰의 푸드점에서 비빔밥을 시켜서 먹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비빔밥(45루불 : 45 x 170원 = 한화 7,650원)은 한국에 정부 식품인 고추장이 나오고 있어 외국에도 수출하기 쉬운 음식이다. 사할린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그 쇼핑몰의 수퍼마켓에 들러 식품들을 살펴보니 롯데 아이스크림, 오복식품들이 대거 진열되어져 있었다.
한국이 러시아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북을 거쳐 들여오고 주, 현대에서 자동차를 사할린에 팔게 되면 사할린에서는 우선 한국의 식품들을 사할린의 쇼핑몰에 대거 들일 것이고 이로써 사할린 거주민들에게 비만 및 발암이 되면 한국의 종합 병원을 다시 사할린에 수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공산품을 제외하고는 정부에서 승인하지 않는 식품은 타국으로 수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보복을 당한다. 신안 천일염, 순창 장류 등 정부식품은 태극표를 지금이라도 붙여 생산제 실명제로 출하하고 식품전문가가 없어도 미리 태극표를 붙여도 된다. 그러나 한국의 식품으로서는 외화벌이는 쉽지 않을 듯한데 이는 한국은 산이 높고 많으며 부존자원이 없어 아이티 강국으로 발전코자 해 왔다. 그래서 제안자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데 이 제안이 세칭 몽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가. 문재인 정부는 아이티 강국 한국에서 우선 사할린, 러시아의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슈퍼에 태극표가 붙은 정부식품 외에는 식품을 수출하지 말아야 한다.
대안으로는 그곳의 음식점에서 음식을 생산해서 팔 영양사나 영양사 부부 (남편 또는 아내 일인이 영양사인 부부)에게는 점포 임대료(최고 3천만원)을 무이자로 10년 대출해 주고 또한 임대료(최고 3천만원)의 30%를 지원해 준다. 즉 최고 6백만원이다.
나. 상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 강점기 36년동안 일본은 조선인을 종군 위안부, 사할린 징용 및 전쟁에 징병 등 일(?)을 많이 했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 17년 동안에도 아르헨티나 땅 구입, 파독 간호사, 파독 광부, 월남 파병 등 일을 많이 했다. 그리고 노태우 정부에서 러시아에 평화 비용을 빌려 준 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제안자가 식품 안전을 위한 제안서를 제출하고는 정부에서는 북의 정상을 만난 것이 여타 정부보다 다른 점이라면 다르다. 그러나 국외적으로는 별로 한 일이 없어 보인다. 한국에서나 타국에서도 기초생활인 식품이 안정화되지 않으면 경제발전도 제한점이 있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경제성장 한자리를 약속한 것이 아니었나 ?
안(국민)을 짜서 밖에만 퍼주어서도 안된다. 농토에 대한 과대한 상속세는 낮추어야 한다. 제안자의 가족들이 해방 후 지켜 온 가산도 아버지는 대목으로 일하고 어머니는 농삿일을 하고 큰언니는 부엌 설림을 살았다, 그래서 아들과 막내딸 외에는자녀들을 대학에 보내지도 못했다.
다. 외국에서 인삼 생산 - 한국담배인삼공사
수출식품에서 과일 채소를 제외하고 제조식품은 당장 수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타국으로부터 보복 당한다.
한국내에서도 신안 천일염, 순창 장류는 태극표를 달고 순창 장류에서는 제 조식품에서 물엿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정관장의 화장품에 대해서는 태극표를 넣을 수 있으며 식품은 아니지만 홍삼액100%도 태극표를 넣어서 판매할 수 있다.
이의 증산과 국내에서 생산하는 인삼의 질을 친환경화하기 위해 사할린 등의 국토를 한국 정부가 임대해서 비닐 하우스 등을 설치해서 6년근의 인삼을 생산할 수 있다면 100% 홍삼액은 건강보조식품으로 외국에도 수출할 수 있다. 물론 태극표를 붙여서다. 이를 위해 친환경 인삼을 키울 인력으로는 60세부터 75세의 건강한 어르신을 3년 주기로 사할린에 파견 근무시키고 숙소와 식품은 정부에서 제공한다. 건물은 가능하면 기존의 건축물을 사용토록 해서 인삼의 생산 인력을 인삼 재배지에 매일 이동해서 일하도록 하면 된다. 이로써 벌어들인 보수는 저축하면 어르신이 유료 양로원이나 노인 장기 요양병원에 입소할 입소비나 입원비로 보탬이 될 것이다. 만일 월 수입 120만원이라면 20만원은 월 잡비로 사용하고 100만원은저축하면 3년이면 3천 6백만원이며 이는 60만원의 입소비 및 입원비인 유료 양로원이나 장기 요양병원에 60달인 5년을 보낼 수 있는 돈이다. 원하면 3년 후 다시 파견 신청해 일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100% 홍삼액의 제조는 국내에서 생산한다.
추진은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추진팀을 구성하고 추진팀장과 팀원을 구성해서 하도록 한다. 러시아어에 능한 인사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우리 민족은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한다.
한국에는 민주평화통일위원들이 있어 왔다. 이들이 나서면 가능하다.
매년 8.15를 기점으로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해서 모아 북에 쌀이나 신안 천일염을 보내도록 한다. 돈을 그대로 보내 북에서 그 돈으로 핵을 개발했다는 말이 나와선 안된다.
참고로 상기 한겨레 신문은
제안자가 제안서를 제출한 안상영 부산시장 당시 중앙정부에서 제안을 추진함에서 적극적으로 또는 가시적으로 추진하지를 않아서 부산시에서 식품안전을 먼저 시행하려고 했는가 보았다(그러나 김대중 대통령과 제안서를 받은 이만섭 국회의장은 중앙정부에서 추진할 의사가 있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한참 이후에도 “아직 다른 대안은 없다” 고 하셨다 )
그래서 부산시는 공무원직장협의회를 중심으로 부산시 공무원들은 * 주, 퍼블릭 웰을 구성해서 공무원들이 투자하고 한겨레 신문사가 가담할 것이라 했다.
이후 중앙정부에서 시간을 가지고 시행할 기미가 보였음인지 그 주식의 돈으로 택배사업을 해볼까 하더니 결국 망하고 말았다. 당시 부산시 의회의장 (조길우씨 - 이후 민선 동래구청장 역임)이 “ 부산시만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 고 들렸다.
참고 문헌
1. 일제 강점기 사할린 징용 희생자 추모관 준공 기념 - 한겨레 문화재단
2. 일제 강점기 사할린 징용 무연고 희생자 추모관 준공 기념식 -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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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퍼블릭 웰 ........
제안자는 공무원으로서 당시 1,108주 즉 1,108,000원을 투자했다. 2001. 7. 11일자 554주(554,000원) /2001. 9. 19일자 554주를 투자했으나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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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해방 후의 풍경 - 돌아오네, 돌아오네
일제시대에 살길을 찾아 또는 민족 해방을 위해 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조국을 떠났던 해외 조선인 대다수는 해방의 기대와 희망을 가슴에 품고 ‘귀국선’에 올랐다. 그러나 고향 산천으로 돌아오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 중략 -
1945. 8. 24일 일제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 2,838명 등을 태운 일본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호가 갑자기 폭발해 침몰하여 1,000여명이 희생당한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 이하 줄임
( 참고 문헌 : [ 한국사의 이해], 송찬섭, 김남윤, 윤대원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8년 429쪽 ~ 431쪽, 해방 후의 풍경 - 돌아오네, 돌아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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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박정희 정부의 글로벌 뇌물 -별첨 파일
-- 2018. 9. 2(일) --
등록 : 2018. 9. 2(일)
부산시청 (시장 : 오거돈)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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