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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018, 봄 문학 기행 - 경남 산청 약산, 참꽃

작성자
안 * * *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 영양사 / 시인 )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2018, 봄 문학 기행 - 경남 산청 약산, 참꽃


- 참꽃과 진달래 -

봄에 피는 참꽃과 진달래는 국어사전에서는 동의어로 나온다.
그러나 제안자가 자랄 때에는 참꽃은 먹을 수 있다고 했고 진달래에는 진이 있어서 먹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참꽃이 피어 지고 나면 진달래꽃이 피는 듯 했다.
허준 동의보감촌이 있는 경남 산청군의 산(약산?)에는 진달래가 만개해 있었고 산 아래에는 매화꽃도 만발해 있었다. 세인들은 만개 시기가 비슷한 벚꽃과 매화꽃을 구분하지 못할 사람들도 있으리라 싶지만 매화의 나무가지는 선비의 기개처럼 곧으며 겨울 눈속에서 피는 매화(=설매)도 있어
매화는 벚꽃보다 일찍 핀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제안자는 동의보감촌의 산에 들어가 참꽃의 꽃잎을 몇개 따 씹어 먹었는데 제법 달고 맛이 있었는데 그래서 이 참꽃을 선조들은 화전(전을 붙일 때 꽃잎을 전 위에 붙인 꽃전)에서 사용했는가 보았다.

♬♬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 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이하 줄임 ) -

♬♬

상기의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인데
김소월 시인은 고향이 북이라고 했고 영변의 지역도 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약산에서 피는 진달래꽃(진이 붙은 )은 먹어서는 안되고
떠나가는 이의 길에 뿌려도 좋을 듯하다.
참꽃과 진달래는 같은 꽃인데 혹시 진달래꽃에 진이 붙는 경우가 있어서
찐득 찐득한 진이 없는 진달래꽃을
이후 세인들이 참꽃이라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산림청은 봄에 진달래꽃에 진드기들이 달라붙지 않도록
방재를 철저히 해야겠다.


- 사학과 관학 -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요즈음 조선시대 서원 (소수서원, 사액서원, 도산서원, 덕천서원 등)들이
다시 정비가 되고 그곳이 기념관으로 건립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 남명 조식 선생의 덕천 서원(경남 지리산 부근 )도 그 하나인데
조식 선생은 남명기념관(산청군 덕산)이 새로 건립되어져 있었다. 길러 낸 제자가 대단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요즈음으로 비교하면 서울의 유명한 종로학원쯤 될 듯 싶다.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로 나아갔다면.....
조선시대의 서원들이 조선말 개국으로 사립 및 공립의 학교로 또 일제 강점기에도 학교가 많이 생겼지만.....그렇다면 여학교(예 : 동래 여중고 / 부산여자 상업고교)가 사립이고 남학교(동래 중고등학교 / 부산상업고교)가 공립이 많은 것도 이유가 있을 듯하다.

0. 남녀 공학 - 전인교육, 인문교육
정부는 이들 학교를 공립으로 전환키는 곤란할 것이지만 남녀 공학으로 해야함에서는 더 주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학문의 중심이 남성 중심으로 흘러서도 안될 것이다.
그리하자면 한국의 국립대가 지금처럼 서열이 있고서는 전인교육, 인문교육은 요원해 질 것이다.

0. 실학 과목 설정 - 한복바느질, 목공, 독서지도
고교(1학년 과정)에서 여학생들은 자신의 한복 한 벌 쯤은 손 바느질로써 지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고 남학생들은 각도 책상 하나쯤은 자신은 손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요리실습은 남녀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리하자면 교육부는 초중고교의 정규수업에서 - 이전 특별활동 / 방과 후의 보충 수업에서 벗어나 - 실생활에 필요한 과목 (실학)을 과정에 맞추어 넣고 강사는 들이면 된다. 상기 외 독서지도도 넣어 초등교의 학생들이 일찌감치 책 읽기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영양교육은 단체급식소의 영양사가 맡을 수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규제 혁파는 이에도 해당이 될 듯하다.
그렇다고 교육에서 옥석을 가리지 말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0. 한자 교육과 예절 교육 - 초등과정
한자는 중국, 일본, 동남아에서도 아직 많이 사용하고 있고 특히 관공서(행정부 및 사법부)에서는 한자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기관청이라고 해서 전문 용어가 없어지라는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일본의 고유언어는 그 수가 적어선지 한자를 많이 사용해서 초등교 과정부터 한자를 철저히 가르치고 있는 듯했다.
컴퓨터 시대라 해도 분야에 따라서는 의사소통에 한자어가 필요하므로 초등교육과정에 ‘ 한자 및 예절 교육’ 을 넣고 강사를 들여 뿌리 교육을 시켜야 한다. 낡은 것은 버리고 취할 것만 취해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 문익점 목화 시배지 -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고려 말 목화씨를 가져 온 것은
학교 교과서에도 나왔다. 기념관도 있었는데 이 목화씨를 심어 번식한 곳(지리산 부근)이 이곳으로 ‘ 삼우당문선생면화시배지’라는 큰 비각이 세워져 있었다.
실제 목화는 열대 지방의 식물이라선지
면직물은 동남아 아열대 지방에 나가면 흔하게 구입할 수 있고 요즈음은 국내에도 수입이 많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문익점의 뜻을 기리어 밭을 일구어 해마다 목화를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 뉴에이지 문학인 ‘ 봄 문학 기행’ 2018. 3. 31(토)--

-- 2018. 4. 1(일) / 4. 2(월)--
등록 : 2018. 4. 1(일)
부산시청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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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 4. 2(월)
부산시청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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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 조식 선생.......... 남명 조식 선생은 왜 정부의 부름(관직을 줌)에 응하지 않고 초야에 남아 사학으로 인재를 그렇게 많이 갈러내었나 ?
남명 조식선생은 선조 임금이 불러도 가지 않고 재야에서 지내다가 선조가 돌아가신 후 광해군때 제수명을 못 잇고 돌아가신 듯하다. 그 많은 유명 후학들을 남기고도 돌아가신 연령에서 유추한 것이다. 남명 조식 선생 사후 광해군은 곧 남명 조식 선생께 ‘ 문정’ 이란 호를 내리셨다고 한다.
한국사에서 사화(선비들이 입은 화)가 4개 있은 것이 연산군(1494년)에서 명종(1567년)간 60여년 동안이다. 즉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 사화(士禍)가 그것이다.
상기 남명 조식 선생이 정부의 부름을 사양하고 벼슬로 나아가지 않은 것은 을사사화에서 조광조가 조정에서 제거된 탓일 듯하다. 이로써 조선에서는 관학이 아닌 사학이 번창하게 되었는데 상기 남명 조식 선생의 덕천서원도 그 하나이다. 명종의 뒤를 이은 선조(1567년 ~1608년)에서 일본이 조선을 침입한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래서 제안자가 이순신 장군에 비유가 되는가 ?
부산시의 여성 공무원들(제목 : ♬ 연탄이 사라지기 까지)의 가족들이 박정희 정부에서 연탄까스를 마시고 죽은 것도 일종의 사화(士禍)이고 제안자가 제안서를 제출하고 제안자의 혈족 및 인척(김창호, 안장호, 안동수, 김선주, 김선배, 이00, 안태화, 강위수)이 죽은 것도 일종의 사화(士禍)이다.
그래서 안상영 부산시장은 제안자가 ‘부산시 공무원 진료의사 지정 제도’ 를 제안 건의 하니 부산시 공무원 직장협의회를 구성케 했다.
말이 났으니 끝까지 하자 !
“ 부산일보 김기태, 부산일보 김기태, 부자라고 괄세마라, 사람팔자 알 수 없다 ” 라는 노래가 내가 어렸을 때 불리었다.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자 아이들의 입에서인데 제안자는 그런 노래가 나온 이유를 모른다. [ 2016년 1월 김대봉이라는 어느 의사가 한국의 베이비 붐 시대에 금정구 장전동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해서 돈을 벌어 은퇴해서 그 돈으로 사하촌의 어느 공기 좋은 곳(금정구 청룡동)에서 노인 요양원을 개원한 것까지는 좋았다 ]
부산일보는 몇 년간 안00씨가 사장을 맡다가 며칠 전 이씨의 사장으로 바뀌었다.
부산일보와 제안자와 관련해서는
문정수 부산시장 당시 ‘ 음식점 단체급식소의 음식 배식 방법을 자율배식의 방법으로 하도록 (-식품의 안전성을 중심으로) 제안한 제안서가 구상이 되고 금정구청(당시 사회과 의료보장계장)에 출근해서 정서를 해서 컴퓨터를 치고 있는데 당일(1996. 4. 19일자) 석간인지 조간인지의 부산일보에 갑자기 정부에 식품의약품관리청(?)이 생긴다는 기사가 났다. 식품화학전문가를 들여서....간단한 기사여서 이를 잠깐 인용(+)해서 제출했다. 제안자는 1980년대 초부터 식품학을 공부했어도 한국인의 질병이 식품을 매개체로 하거나 식품에서 온다는 말은 없었고 ‘ 약물의 오남용’ 이란 용어는 잡지에서 더러 보였다. 즉 식품안전이란 용어는 제안자가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공무원 조직에 있는 식품관련 조직은 구청의 식품위생계, 그리고 농촌진흥청(하나의 농촌지도소)이 그것이다. 식품위생은 말대로 식품위생이다. 즉 미국보다 일본보다 제안자가 먼저 식품안전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한국의 식약청은 안전이란 용어를 간판에 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식약청은 미국 식품의약국을 본딴 것이라 노무현 대통령은 - 김대중 정부와 같이 탄생한 - 식약청을 미국 꽁무니를 따라가는 것이라 폄하했는데 이는 식약청이 생긴 후 제안서가 제출이 되면서 그 제안서에서 외청인 식약청장이 한국전통식품의 원장을 발령토록 제안(제안서 72쪽)이 되니 그리한 것이다.
그런데 제안서의 식품의 안전은 각시도 식품생산연구소가 중요하고 또한 식품안전기금도 거두도록 제안이 되어져 실제로는 식품의약청과는 관련성이 적다. 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은 - 식약청은 미국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폄하하고 - 식품안전처의 독립을 발표한 것이다.
제안자가 제안서를 제출하고 이후 (2006. 9. 18) 부산일보에서 산청을 한방의 고장으로 한다는 기사가 노무현 정부에 나서 정부 제안추진 내용으로 별첨과 같이 등재하였다. 상기 산청군과 한방의 관련성에 대해 의문이 있었는데 이제야 풀렸다. 즉 가야국의 김수로왕은 김해김씨의 시조이고 부인이 인도의 허왕후로 역사서는 기술한다. 허준은 이씨 조선에서 동의보감을 저술했다. 그 이전 통일신라는 김유신 장군의 공으로 삼국통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유신 장군이 김해김씨라고 하고 김유신의 누이가 신라의 어느 왕과 결혼을 하여 왕비가 되었다. 그 이후 신라는 삼국통일을 했으니 김유신 장군의 공은 큰 것이다. 설에 의하면 김유신의 누이가 왕비가 되었을 때 김유신의 선조의 1인(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을 구형왕이라 칭하고.... 그 무덤인 구형왕릉은 경남 산청군에 있었고 봉은 없으나 그 무덤 위에 수많은 작은 돌들이 덮고 있었다. 상기 뉴에이지 문학지 ‘ 봄 문학 기행’ 에서 그곳을 둘러 보았는데 돌은 고인돌이 아니었다. 즉 산청군에 한방이 간 이유는 여기에 있는 듯해 제안자는 글을 보충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가 허씨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김해김씨. 아니고 윤씨였다고요 ?
....................아래 ..........................
제안 추진 내용 2006년 12)

한방 약초산업을 지역 특화 전략으로 육성하려고 나선 경남 산청군은 올해 3천만원의 자체 예산을 확보해 - 이하 줄임 (- 2006. 9. 18일 부산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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