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안정은 (제안자 - 영양사)
주 제 : 식품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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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서 :
한국전통식품 및 전통양념 제조와 유통에 따른 정부 규제에 관한 고찰과
그 발전방향 -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 1999. 10. 20, 김대중 대통령 / 안상영 부산광역시장 / 윤석천 금정구청장 )
제안자 :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기획 감사실 (실장 : 임병철 )
지방행정 주사 (6급), 안정은 (安貞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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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추적 한국인 남성의 대머리 (1)
- 정부 식품 먹어야 대머리 방지 -
제안자는 성(姓)이 안(安)가이다. 우리 조상은 ‘중국’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이 안가의 성도 이(李)씨의 성에서 바꾸었다고 하니 그렇다면 이씨도 그 조상들이 중국에서 왔는가 보다
안가의 집안에서 여성들을 귀히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 ( 李 → 安 : 성에서 아들 ‘子’ 자 대신 계집 ‘女’ 가 성에 있다 )
- ( 중간 줄임 ) -
- 추적 : 제안자 집안 안가 남성들의 심한 대머리 증상 -
1945년 8월 한국은 해방 후 남북이 분단이 되었다. 김구선생은 -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을 우리 민족에 의한 자주적인 통일을 하고자 - 건국 헌법(1948년 7월 제정)이 마련이 되고나서 이후 북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겠다고 해서 남의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자택에서 1949년 6. 26일 암살된 듯하다.
이후(40여년 이후) 김영삼 대통령(김녕 김씨)이 1993년 취임 후 그해 즉 1993. 8.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 내가 김일성을 직접 만나겠다” 고 언론에 공표하자 이튿날 북에서 김일성이 죽었다고 발표했다. 당해년도에 김영삼 대통령은 남과 북이 통일을 하려면 통일비용이 남쪽에서 많이 들므로 ‘북쪽을 우선 경제 발전을 시켜야 한다’ 고 남북통일의 방향을 정하고 이후 북에는 남쪽에서 투자한 경제협력제도인 개성공단이 생긴 것이다.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건국(대통령 : 이승만)된 후 육군 소위 안두희가
1949. 6. 26일 김구 선생을 암살한 것은 김영삼 정부에서 표면화되었다. (퇴임 후 집필한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에서도 언급)
돌이켜 생각해보면 집안 안씨 남성들에게서 그렇게 대머리 현상이 심했던 것은 상기 안두희의 사건으로서 진단하고 따라서 제안자는 한국남성들도 안전하고 안정된 정부 식품과 주류를 마시면 대머리(제안서 64쪽, 68쪽 - 각시도청 식품생산연구소에 유전성 질병연구소 설치, 제안서 67쪽)도 방지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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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 줄임)
그리고 육군 소위 안두희씨가 * 1949년 6. 26일자( * 김영삼 대통령의 회고록 1권 70쪽 / * 사랑만한 교육없다. 이자혜 엮음, 문예당 1997년 46쪽) 남북과의 통일을 위해 ‘북으로 넘어 가겠다’ 는 항일 운동가 김구 선생을 김구 선생의 자택에서 총으로 죽였고 이듬해인 1950년 6. 25일 새벽에 북에서 남쪽을 침입해서 전쟁이 된 것이 6.25 한국 전쟁이다.
참고로 일제 강점기 이전, 안중근씨(순흥 안가 - 어머니는 백천 조씨)가 한국 침략의 원흉이라는 일본의 이등박문을 1909. 10. 26일 총으로 죽였는데 안중근(처 : 김아려)은 고려 때의 유명한 유학자인 안향의 26대 손으로 출생지는 이북인 황해도였고 김구 선생과 안중근의 집안은 항일운동의 과정에서 서로 사돈이 되었다. 즉 안중근의 동생인 안정근의 딸 안미생이 김구 선생의 장남인 김인과 결혼을 하면서다.
참고문헌 : 안중근 평전, 김삼웅 저, 2009년 발행 시대의창, 34쪽, 78-79쪽 / 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저, 2009년 발행 추수밭 314쪽(안중근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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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 7. 9(토)
보건복지부(장관 : 정진엽 ) - 참여 - 자유 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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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혹시 남성들의 대머리는 마시는 술이 원인일까 ?
한국인 남성들은 100% 술을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나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술이 인체에 좋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대학가에서는 술에서 남녀 대학생의 구분이 없는 추세라고 한다. 주거니 받거니....
그러면 마시는 ‘술 자체’가 한국 남성들 대머리의 원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려면 젊어 출가해서 금주하는 스님들의 머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으나
제안자는 절에는 주로 여승 절(=비구니 암자)에만 다녀서 비구 스님들의 머리를 살펴 볼 기회조차도 없었다.
참고로 대머리가 심한 제안자 집안의 남성(안가)들은 대부분 폭주는 삼가고 밥상에서 소량의 약주를 드는 애주가(?)가 많은 편이었다.
-- 2018. 11. 12(월) --
등록 : 2018. 11. 12(월)
제안청 부산시청 (시장 : 오거돈)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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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중근씨의 무덤, 러시아 어느 기독교인들의 무덤에 ?
안중근씨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며칠 전 인터넷 기사에 의하면
안중근이 사형을 당한 후 * 당시 러시아에 있는 어느 기독교인의 공동 묘지에 묻혔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읽은 이들도 여태껏 함묵하고 있는 것은 그 유해의 장소가 알려지는 것이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실제 주위에는 * 일제 강점기에 항일 운동을 한 인사들의 죽음, 그리고 그 무덤에 대해서 들어보면 무덤에서 그 시신도 없앴다는 말이 있었다.
전북 고창에는 고인돌 박물관이 있고 그 주위에는 고인돌들이 매우 많다. 그것은 이 고창 부근에서 전봉준 장군이 농민항쟁을 일으켜 실패해서 죽자 인근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고인돌을 무덤에 올린 듯하다.
-- 2019. 5. 30(목) --
부산시청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보건복지부(장관 : 박능후) - 참여 - 자유 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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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러시아에 있는 어느 기독교인의 공동 묘지에 묻혔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는 것이다...................안중근의사는 북만주 하얼빈역에서 일본의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고 5개월 후인 1910년 3월 26일 만주 뤼순감옥에서 처형당했다. 이후 아직까지도 그 유해를 찾지 못했다는데 최근 국가기록원이 발굴해 공개한 러시아 연해주 지역신문의 1910년 4. 21일자에는 안의사가 사형된 직후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 교도소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됐다는 기사가 실려있다. 이 신문기사는 ‘ (일본)아사히 신문 특파원에 따르면’ 으로 시작하는 인용형태인데 막상 당시 아사히신문에서는 그런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더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 - 동아일보 2019. 6. 3일 월요일 A30면, ‘횡설 수설’ 칼럼, ‘ 안중근의 유해’ 안영배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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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 6. 5(수)
제안청 부산시청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보건복지부(장관 : 박능후 ) - 참여 - 자유 게시판
※ 새제목 : 추적 - ♬ 한국인 남성의 대머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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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
항일 운동가로서 국가 유공자 맞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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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의 내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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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에 항일 운동을 한 인사들의 죽음, 그리고 그 무덤에 대해서 들어보면 무덤에서 그 시신도 없앴다는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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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점선 부분 안의 내용에서의 항일운동이란 일제강점기에 만주에 가서 소장사를 한 것이다. 이후 부인도 병사하고 그 즈음 낳은 딸 하나는 자라면서 곱추가 되었다.
제안자 아버지는 종손이지만 상기인은 아버지의 삼촌(종갓집의 장남 및 장손이 아닌) 이었으니 일제강점기에 만주에 가서 항일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항일운동을 하자면 항일 운동가들의 먹을거리가 있어야 하니 소장사를 한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항일 운동가로서 죽음도 비극에다 무덤에서 시신도 사라졌지만 만주에서 한 소장사가 항일운동이라 국가 보훈처가 인정한다면 늦게나마 국가 유공자가 될 수 있을 듯해서다. 1973년 본인이 공직에 채용되어 근무하고 그 이듬해(1974년 5월 28일자) 해경(=해양경찰관)의 함장으로 동해 속초에서 근무 중 배가 함포 사격을 당해 실종된 해경 함장 안정열씨(제안자의 오촌 아저씨로 노숙자 안동수와는 사촌지간)는 상기 항일 운동가의 둘째 아들이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항일 운동 당시 만주에서 소로써 먹을 거리를 제공한 소장사도 유공자로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연락처 : 안정열씨의 친동생 : 공일공 - 사공구오 - 구칠삼구 )
첨부 파일
0. 상기 본문
1. 거꾸로 읽는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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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 6. 7(금)
제안청 부산시청 (시장 : 오거돈) -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등록 불가)
국가 보훈처 (처장 : 피우진)- 민원참여 - 민원, 질의응답 ( 주소 입력 단계에서 장애로 등록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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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제목 : ★ 2 -1 항일 운동가로서 국가 유공자 맞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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