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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대학 행정학과에 대통령학 교과목 개설 외 (2)

작성자
안 * * *




작성자 : 안정은 (제안 건의자 )
관련대호 191014-1(2019. 10. 14 월요일 07:57)
수 신 : 유은혜 (⤌김상곤 )교육부 장관

제 목 : 대학 행정학과에 대통령학 교과목 개설 외 (2)


한국은 분단국가로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다. 대통령학은 대학의 행정학과에서 교과목으로 넣고, 한국전통식품은 대학의 식품영양학과에서 교과목으로 분리해서 넣어야 한다
그리고 해방 후의 정부사는 대통령학에서 ‘부록’ 으로 첨부(제목 : 해방 후 정부사의 이해)하면 되며 부록에는 자서전에서 그 인물의 연감이 실리듯이 당해 정부에서의 중요 공적과 과실을 대통령별(즉 정부별로)로 담도록 한다.
우선 대학의 교과서에 대통령학이란 교과목이 개설이 되어야 해방 후 정부사에 대한 실적이 밖으로 나타나고 이에 대한 논문도 나오며 이 학문분야가 점차 정비가 되면 행정 대학원 관리자 과정(6개월 과정) 등에서 강의가 개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 : 김영삼 전 대통령 고려대 초청 특강
첨부 : 해방 후의 정부사 (부분 )

등록 : 2018. 3. 10(토) / 2018. 3. 11(일)
부산시청 (시장 : 오거돈)-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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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등록 : 2019. 10. 14(월)
부산시청 (시장 : 오거돈)- 부산민원 120 - 시민참여, 시민게시판 외
* 관련대호 삽입하여 재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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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고 ==========

다. 식생활 안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1 )


0. 김영삼 전 대통령 고려대 초청 특강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2000. 10. 13,
‘대통령학’ 강좌가 개설된
고려대학교 행정학부의 초청을 받아 이 대학 국제관에서
2000. 10. 13, 오전 11시 30분부터 70분동안
대통령 시절의 경험담과 대통령 자질, 남북문제 등에 대해
강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2000. 10. 9, 대한매일, 오풍연 기자 --


0. 전 김영삼 대통령 고려대학에서 ‘특강’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01, 4, 12 대전 사학 연금 회관에서 열린
고려대학 행정대학원의 ‘대통령학’ 강의를 하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려대 특강은 2000년 10월 13일, 서울 캠퍼스에서 행정학과 학생들을 상대로 한 ‘대통령학’에 이어 퇴임후 두 번째 특강이다.

-- 2001. 4. 13, 국제신문(부산), 김 경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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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 ==========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 영양사 )

주 제 : 식품 안전 (Safe fo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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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서 :
한국전통식품 및 전통양념(조미료) 제조와 유통에 따른 정부 규제에 관한 고찰과 그 발전방향 -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1999년 10월 20일, 김대중 정부)


제안자 :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기획감사실 (실장 : 임병철 / 구청장 : 윤석천)
지방행정 주사(6급) 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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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해방 후 정부사의 이해 (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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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를 갔다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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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2일, 청남대에 가보니 대통령 기념관(본관)이 다시 정비되어져 있었다. 이제는 세종도시에서 맡는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의 이력에서 살펴보니 김대중 대통령의 출생지는 전남 신안이었다. 본인이 근무하며 식품안전을 위한 제안서를 작성한 곳이 부산 금정구청 기획감사실 내 행정자료실이였고 그곳에는 적지 않은 행정자료들이 있었다.
백과사전식의 도서관은 아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시) 자료실에는 김대중씨의 자서전이 2,3권이 있었으나 읽을 겨를이 없었다.
청남대에서 역대 대통령의 이력을 살펴보니
상업고교 출신의 대통령이 세분이다. 김대중 대통령 (전남, 목포 상업고), 노무현 대통령 (부산, 부산상업고), 이명박 대통령( 상지상업고 )이다.


※ 청남대는 충북 청주시에 소재하며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이 청남대 주위가 대청호수와 수려한 삼림으로 둘러싸여 이를 칭송하자 6개월 후 이곳에 대통령 별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이 별장이 청남대이다. 그간 외부에 개방이 되지를 않았으나 노무현 정부에 와서 청와대가 이 청남대와 터를 충청북도에 관리권(노무현 대통령 →당시 이원종 충북지사)을 넘기면서 국민들에게 개방이 되었다.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로 향하는 진입로에는 이후 역대 대통령 기념관이 건립되어 대통령 기념관 본관과 별관이 있고 그리고 대청호 주위에는 역대 대통령의 길(산책길과 유사함)이 구분해서 따로 나 있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산책하기에도 좋다. 청남대에는 청남대를 지키는 경비대가 있었으므로 대통령의 사저(즉 청와대)가 청남대로 옮겨도 무방하리라 본다.
청남대(대통령 별장) 바로 옆에는 헬기장이 있다.
제안자는 ‘전두환 대통령 길 ’을 걷고 나서 배가 출출해서 대통령 기념관 앞의 매점(기념품 판매점)에서 구운 계란 1줄( 맥반석에 구운 계란 3개입)을 사서 맛있게 먹고 나서 기다리고 있던 여행차량(오륙도 여행사)에 올랐다.

-- 2015. 10. 23일(금) --

등록 : 부산시청 (제안청) - 시민 참여 - 시민 게시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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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청남대의 대통령 기록관의 기록 및 보충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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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승만 대통령 ( 약 12년 : 1948년 ∼196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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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건국의 기초 마련

나) * 토지 개혁 (= 농지개혁)

다) 크리스마스날을 공휴일 지정 - 크리스마스 씰 판매로 결핵 퇴치

라) 공무원 연금법 제정 (1960년 1월 )
- 대상 : ① 선거에 의하여 취임하는 공무원, 동리장, 동리의 직원, 조건부로 채용된 공무원과 임시로 채용된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에게 이 법을 적용함.

참고 문헌 : [ 공무원 연금 ], 2015년 1월호, 54쪽 ∼ 55쪽/ 법제처 홈페이지 ( 2015. 1. 20일 현재)

마) 해방 후에도 -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한 한일합방(1910. 8. 29일)으로 일본으로 간 - 이씨왕가 자손의 귀국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왕실 재산을 국유화했다. 이는 해방 후 왕정복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권비영 저, 2009년 다산북스 )

※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

※ 독립(항일) 운동가이며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박사) .......... 1875년 황해도 평산군에서 출생 / 오스트리아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1935년 신혼여행(만 60세) (- 2015. 9. 2일(수) 조선일보, A26면, 박은혜, 기파랑 에디터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1919년 4. 13일 수립 - 기미년 3월1일 독립선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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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 개혁 (=농지 개혁) .................

☆ 1
작성자 : 안정은
- 이승만 정부의 토지 개혁-

제안자의 선조(安家)는 지금의 고향(부산 금정구 청룡동)에 터를 잡아 300년 가까이 살아왔다. 바로 위에는 천년 고찰인 범어사가 있어서 주위에는 대처승의 자손들도 적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까지에도 사찰인 범어사가 많은 땅을 소유하고 그 땅은 아래의 백성들이 소작을 하였다고 했다.
- 책을 구하지 못하여 읽어 본 바는 없으나 한때 부산대학교 교수였던 김정한 선생님의 소설 ‘ 사하촌( 寺下村) ’이라는 책이 그 현실을 묘사한 책이라고 들었다. 작가의 생가(生家)는 부산 금정구 남산동이다 -
본가에서는 예전부터 선산은 있었으나 경작할 토지는 많지 않은 듯 했다.
그리해서 범어사의 땅을 소작해오다가 건국 후 이승만 정부에서의
*토지개혁(=농지 개혁)에 의해 얼마간의 논밭을 소유할 수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소작하고 있는 땅값을 5년 이내에 분할해서 토지주인(=범어사)에게 완납하면 소유권을 소작인에게 넘겨준다고 했다. 그리해서 넘겨받은 논밭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본가의 문전옥답이었다.
한참 이후 범어사와 주위의 주민들간에는 소송의 분쟁이 많았다. 소송에서 주민들이 땅 소유주(=범어사)를 계속 이기지를 못하자 주민들은 바로 위의 사찰인 범어사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지를 못하였다.
그리해서 본인은 어머니께 이를 물었는데 어머니(윤금동 - 망)의 말씀은
“ 당시 나라에서 소작하는 땅값을 5년내에 상환토록 하여 그동안 지은 곡식은 절(범어사)에 바치고 쑥밥을 해서 먹었다 ” 는 말씀도 하시면서 5년 안에 땅값을 땅 소유주에게 주는 것이 쉽지 않아서 중간에 지불을 그만 둔 이가 많은 듯했고 이들이 “ 중간에 땅을 타인에게 넘겨서 분쟁이 된 것일 듯 ” 이라 하시었다.
당시 공공기관청(즉 동래구 북면출장소)도 범어사의 땅을 사용하면서 배짱을 부렸던지 땅값을 범어사에 치루지 않고 공공기관청으로 계속 사용해 오다가 주위 주민들과 범어사간에 범어사 소유의 땅으로 소송이 계속되고 말이 많아지자 범어사는 이전의 ‘북면출장소’ 의 부지를 소송하여 승소 후, 범어사의 소유로 정리하였다.
그리해서 이전(以前) 북면출장소의 부지는 범어사의 소유로 돌아갔고
그 부지는 현재 ‘ 범어사 불교대학 동창회 사무실’ 이 자리해서 지키고 있다.
( ※ 조선시대 ‘ 대동법’ 이 발의가 되어 시행이 되었는데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 KBS1, TV, 일요일 밤, 역사저널 그날, 2015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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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개혁(=농지 개혁) .............농지개혁은 지주의 몰락과 함께 봉건적 토지소유를 해체시켜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송찬섭, 김남윤, 윤대원 공저, [ 한국사의 이해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8년, 448∼ 4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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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작성자 : 안정은
- 해방 후 정부사의 이해, 사사오입 개헌 -

사사오입 개헌이란 ?

건국 후의 초대 정부인 이승만 정부는 정부 수립의 1948년부터 시작하여
4년 중임제의 임기는 8년 후이므로 그 임기가 1956년까지이다.
( 초임연령 75세 + 8 = 83세)
그간 1950년 6.25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하여
1956년 임기가 끝나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 연임제한 철폐를 위한 개헌을 1954년 9월 국회에 상정했다. 당시 여당은 자유당이었다.
그 결과 국회의원의 재적의원은 당시 203명이며 개헌은 중요사안이라서
재적의원의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했다.
1954년 11월 치루어진 개표결과는 찬성이 135명 이었다.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 이다. 135.333 이란 숫자는 135 란 수를 넘는 수이지만 절대 136명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결이 된 것인데 이는 이후 이승만 정부의 불씨가 되었다. 이승만 정부의 임기(삼선) 1960년 ( 75세 + 8 + 4 = 87세 )이 끝나는 해이다. 1960년 임기가 끝나는 이승만 대통령은 삼선개헌이 아닌 초대 대통령의 연임제한의 철폐로 하여 다시 1960년( 당시 87세) 대통령에 출마했다. 이 시기인 1960년 초에 공무원 연금법이 도입이 되었다. 그런데 그 해 3. 15일 자유당의 선거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4. 19 학생의거로 나아갔다.
이로써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5월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국회의 정치와 정부가 동일시화된 결말로 이해가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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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5월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하와이는 독립 운동가 이승만씨가 일제 강점기에 항일 운동을 한 지역이었다. 우남 이승만 대통령(1875년 ∼1965년)은 4.19혁명으로 하야한 직후인 1960년 5. 29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하와이로 떠난 후 1965년 7월 19일 서거할 때까지 5년 2개월간 숙소와 생활비로 곤궁한 말년을 보낸 듯하다. 당시 숙소와 생활비를 제공한 한 교민(윌버트 최 = Wilbert Choi : 1914년 ∼1970년 )에게 사저인 서울 이화동 1번지에 소재한 ‘ 이화장(1946평, 6433제곱미터)’ 의 소유권을 양도한 ‘ 위임장 ’ 원본이 처음 공개가 되었다. 이승만은 당초 2∼3주 머물 생각으로 하와이로 떠났으나 정부의 귀국 불허 방침으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한편 월버터 최씨는 이 위임장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돌아가시었다

-- 2015. 7. 18일(토), 조선일보, 1면 ( 제목 : 李 前대통령 곤궁한 말년......) 이한수 기자 / A4면 ( 제목 : 한국땅 밟고 죽는 게 소원...... ), 이한수 기자 / A5면, (제목 : 建國 대통령 서거 50주기인데.....예년과 다름없는 평범한 추모식 ) 조의준, 김승재 기자 / 외 A5면, 유석재 기자, 허윤희 기자 --
-- 2015. 7. 20 (월), 조선일보, 1면, A12면, 이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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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김영삼, [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김영삼 회고록 ], 2000년, 백산서당, 98쪽 ~ 143쪽

참고 문헌 : [ 한국사의 이해] , 송찬섭, 김남윤, 유대원 공저,(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서울) , 2008년 446쪽 ~ 447쪽.

-- 2013. 9. 17(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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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대통령(약 1년 8월 : 1960. 8. 13 ∼1962. 3. 24일, 선출직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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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1962년 1. 20일 식품 위생법 제정 및 공포

나) 4.19직후 내각제로 개헌
- 국회 : 대통령 윤보선, 총리는 장면 (학위 : 박사)

※ 임기 중, 군인 박정희씨의 1961. 5. 16, 군사 정변(政變)에 의해서 윤보선 대통령은 1962년 대통령직에서 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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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보선 대통령( 재임기간 - 자료) : 대한민국 헌정사, 헌정연구원, 1996년. 443쪽
* 윤보선 대통령(영부인 : 공덕귀)은 이씨 조선 명문가의 후손으로 93세에 사망 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을 반대하고 유언대로 가족장을 치렀다.( - 조선일보, 2016. 5. 23(월), A31면, ‘ 최보식이 만난 사람, 윤보선 전 대통령 장남 윤상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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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모두 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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