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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1905년과 1906년의 그 당시 인천은?(2)

작성자
송 * *

비록 1905년과 1906년에 인천을 오가며 느낀 소회를 통해 당시의 인천의 풍광과 당시 지식인으로서의 소회를 살펴볼 수 있으니 인천의 옛 풍경과 지도를 보는 듯하며, 지식인으로서 고민의 일단을 보아 역사의 반추로 오늘의 교훈을 얻는다. 또한 감히 이 글로 선인의 공덕에 후인으로서 그 흐트러뜨리지 않은 언행의 마음가짐을 다짐함도 아울러 가진다.
(한자에 쉽게 적응하지 않는 세대를 위해 한글로 음운을 달아 한시를 읽기 쉽게 하고자 하였다)

1. 이월 초순에 경성을 등지고 인천을 향해 기차에 올라타니 잠깐사이 인천에 도착했다. 이어 감회가 일어 기차행 절구 네 수를 쓰다(1905년 운인 송홍 나이 34세)
二月初旬(이월초순), 背京城向仁川(배경성향인천), 乘汽車頃刻着仁(승기차경각착인), 因感作汽車行四絶(인감작기차행사절)

京發仁川向(경발인천향) 서울을 출발하여 인천을 향하니
車飛汽笛鳴(차비기적명) 기차가 날자 기적이 울린다
轟轟八十里(굉굉팔십리) 기적소리 삑이삑 팔십 리를
不滿片時行(불만편시행) 잠시도 못되어 가는구나

誰刱火輪制(수창화륜제) 누가 증기 기차를 만들었는가
自西轉渡東(자서전도동) 서양에서 점차 동양으로 건너왔네
島夷先壟斷(도이선농단) 섬오랑캐가 먼저 독차지하여
日攫萬千銅(일확만천동) 날마다 천만금을 훔치는구나

財爲人血脈(재위인혈맥) 재물은 사람의 혈맥이요
港是國咽喉(항시국인후) 항구는 나라의 목구멍이네
目下輸他管(목하수타관) 눈 아래 수송을 저들이 관리하니
我民寧不羞(아민녕불수) 우리 민족이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最恨吾儒習(최한오유습) 가장 한스러운 건 우리 선비의 습관이
全然厭刱新(전연염창신) 새 것 창제하는 것을 전혀 싫어하는 것이네
從玆加猛省(종자가맹성) 이제부터 모질게 반성하여
着個發明眞(착개발명진) 저 발명품의 진가에 눈을 뜨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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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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