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설화

벼락바위와 부사암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1757
자월도에는 벼락바위가 있는데 그곳에는 어느 아름다운 열녀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먼 옛날 젊은 부부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하여 자월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들은 이 섬에서 고기도 잡고 아이도 낳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부부는 마을 끝 푸른 바닷가 탁 트인 곳에 집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그들 부부의 꿈에 큰 구렁이가 연기를 뿜으며 나타나
“이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에게 해로울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부부는 구렁이 말이 신경이 쓰였지만 전망이 좋은 집터를 포기하지 않고 집을 짓기로 했다.
그 후에 젊은 부부는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장성할 무렵 남편이 죽고 아들과 홀어머니가 외롭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심한 태풍이 몰아쳤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어서 언제나 날씨는 예기치 못하게 시시각각 변했다. 바람이 몹시 불고 바닷물이 거세게 출렁이며 지붕이 들썩거리고 집 밖에 있는 물건들이 바람에 날아다녔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날, 아들은 고기를 잡으러 배가 있는 해변으로 갔다가 아름다운 여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실신해 있는 여인을 업고 자기 집으로 왔다. 며칠간 사경을 헤매다가 여인이 깨어났다.
여인은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딱한 사정을 젊은 어부와 그의 홀어머니께 얘기했다.
“저는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아버님께서는 병에 걸려 거동도 못하고 어머니는 품팔이로 살림을 꾸려 가고 있으나 워낙 식구들이 많기 때문에 어려운 생활이었습니다. 어느 날 동네 주모가 저희 집에 오더니 영흥도에 있는 어느 부잣집 아들이 병에 걸려서 얼마 후 죽을 목숨인데, 그 아들과 혼인할 처녀를 구한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 대신 사례를 후하게 쳐서 준다기에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고 영흥도로 가던 길에 죽을 고비를 만난 것 입니다.” 
여인은 배를 타고 영흥도로 가는 도중 태풍을 만나 바다에 표류하여 자월도 해변에 닿은 것이었다. 여인이 말하기를 자기는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니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신이 이 집에서 집안 일을 돕겠다고 했다. 젊은 어부는 여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자신의 집에서 함께 있으라고 하고 그 어머니도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두 남녀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홀어머니도 여인의 행동거지나 살림하는 솜씨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젊은 어부는 여인에게 청혼을 했고 이 여인도 젊은이가 착하고 성실한 것을 알고 청혼을 승낙했다. 비록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아들 부부는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들 부부도 겁이 나긴 했지만 고기를 잡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바다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고기를 잡으러 나간 남편도 밤새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 부인은 바위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을 기다리던 부인은 몇 날이 지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울다가 바위에서 뛰어내려 죽고 말았다. 며느리가 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날 밤에 갑자기 벼락이 옆의 바위에 떨어졌다. 그곳에 가 보니 바다에 나갔던 남편이 구렁이에게 물린 채 죽어 있었고 커다란 구렁이가 바위에 깔려 있었다. 그리하여 그 후로 이 바위를 벼락바위라 부르고, 며느리가 떨어진 바위를 부사암(婦死岩, 며느리가 죽은 바위)이라고 불렀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