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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인천 이씨 중시조 이허겸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4795
연수동 원인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화사거리가 있다. 이 사거리 주변 문학산 남동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동네가 부수지(浮水地)마을이라고 불리는데 이 일대의 지형이 풍수지리적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즉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세라고 해서 예로부터 불리어 온 이름이다.
이 마을 북동쪽에는 까치섬이라는 곳이 있는데 실제로는 섬이 아니지만 옛날 바닷가였던 이곳에 밀물 때가 되면 마치 물로 둘러싸인 섬처럼 보이기 때문에 가짜섬 또는 까치섬이라 불렸다는 곳이다. 이 섬의 중앙이 바로 연화부수형 땅으로, 이곳에 인천 이씨의 중시조인 이허겸(李許謙)의 묘지가 있다.
이허겸의 집안은 통일 신라 말기인 8~9세기부터 인천 땅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 온다. 이전에는 그다지 융성하지 못했으나 부수지 마을에 조상들의 묘소를 쓰면서부터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
이허겸의 선조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이 사람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許)씨 성을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상 중에 허기(許奇)라는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귀국하지 못하고 황제 현종을 따라 촉나라로 피신해 황제를 모셨는데 난이 평정되고 환도한 후 황제가 허기를 가상히 여겨 자기의 성인 이씨 성을 하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신라의 경덕왕은 이를 크게 기뻐하며 허기를 소성백에 봉하여 이때부터 그가 살고 있던 지금의 인천이 소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다.
이씨 성을 하사 받은 뒤로는 집안에서는 조상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에서 이허겸(李許謙)에서 보듯 한동안 ‘이’씨와 ‘허’씨를 함께 성으로 쓰고 이름을 한 자로 짓곤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에는 고려 인종 때 문정공 이지저가 지은 「이공수묘지명(李公壽墓誌銘)」의 기록에 따라 이 집안의 선조를 황해도 신천에 살다가 인천으로 이주한 기평이라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가 8세기 전기에 소성(邵城, 인천) 태수로 부임한 뒤부터 연수구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의 후손 중 한 사람이 당나라에서 이씨 성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인천 이씨가 가장 흥성한 것은 고려 문종 대부터 순종, 선종, 헌종, 숙종, 예종 대를 거쳐 인종 대에 이르는 80여 년 간이다. 이들 7대의 임금을 거치는 동안 인천 이씨 가문은 왕가의 외향(外鄕, 외가)이거나 왕비의 내향(內鄕, 친정)이었기 때문에 천까지도 칠대 어향으로 불렸다.
이허겸 대를 지나 인주 이씨가 왕실과 직접적으로 혼인 관계를 맺게 된 것은 그의 손자인 이자연 때부터다. 이자연의 세 딸이 모두 문종의 비로 들어갔는데, 특히 장녀인 인예순덕 태후는 순종, 선종, 숙종 등 세 임금과 대각국사 의천을 비롯해 왕자 열 명과 궁주 2명을 낳았다. 이 때문에 숙종 때는 인예순덕 태후 이씨의 고향인 소성현을 더욱 높여 경원군, 곧‘(왕비가 태어나) 경사의 근원이 된 곳’으로 불렀다.
인주 이씨는 또 해주 최씨, 경주 김씨, 파평 윤씨 등 각지의 호족들과도 혼인을 하며 권력을 키웠는데, “왕자나 공주 가운데 인주 이씨의 외손이나 생질이 아닌 사람이 없다.”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자연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오른 인물로 임금에게 관리의 공정한 등용과 부역으로 지친 백성들의 세금을 1년 간 면제해 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는 기록이『고려사』에 전한다.
인천 이씨는 권력이 계속 커지면서 결국은 왕권까지 넘보아 인종 4년(1126) ‘이자겸의 난’을 일으키는데, 이 난이 실패하면서 이자겸과 그의 아내, 아들 모두 유배 길에 오르고, 그의 딸인 두왕비도 폐비가 되어 내쫓겨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후대 공양왕 2년(1390) 칠대어향이었던 곳이라 하여 다시 경원부로 승격된다.
인천 이씨 중시조 이허겸의 자취는 지금 인천 지하철 1호선 원인재역 옆에 복원되어 있는 그의 재실 원인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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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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