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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송해면 숭뢰리(崇雷里)

분류
강화군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588
○숭뢰(崇雷)
숭릉(崇陵)이 있었다 하며 숭릉의 숭(崇)자와 우뢰(雨雷)라는 마을의 뢰(雷)자를 따서 숭뢰리라 부른다.
○골말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곡촌으로도 부른다.
○금굴
임송굴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서 금이 나왔다고 하며 금골, 금곡, 금곡촌이라고도 부른다.
○금굴다리
금굴과 상도리의 다섬개 사이에 있는 다리(다송교, 다슬갯 다리).
○남동(南洞)
금굴 남쪽에 있던 마을.
○대병창
통어영의 대변청(待變廳)이 있던 곳. 유수 홍낙순(洪樂純)이 1779년에 세웠으며 군기고, 화약고가 있었다. 대변창으로도 부른다.
○덕송당
우리 동쪽에 있는 산.
○도둑재
금굴 서쪽에 있는 마을. 또는 금굴과 상도리의 다섬개를 왕래하는 고개.
○동녘말
금굴 동쪽에 있는 마을.
○방아다리
우리 앞에 있는 들. 방아다리처럼 생겼다.
○새창너머
우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송정(松亭)
우뢰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고 하며 송정촌, 곡촌, 골말로도 부른다.
○숭뢰다리
숭릉물 앞에 있는 다리로 숭릉교, 숙룡교라고도 부른다.
○숭릉몰
송정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숭릉 터 밑이 됨.
○숭릉터
숭릉다리 북쪽 언덕에 있는 터. 고려시대 숭릉이란 아기능이 있었는데 도굴되었다.
○오리잿산
우뢰 서쪽에 있는 산.
○우뢰고개
우뢰와 송정 사이에 있는 고개로 어래현으로도 부른다. 고려 제23대 고종이 몽고 침략을 피하여 강화도 승천포에 와서 이 고개를 넘어왔다.
○임송골
낭터림 서쪽에 있는 마을. 소나무 숲속에 마을이 있어 임송동, 임송촌으로도 부른다.
○전좌촌(殿座村)
우리 동쪽에 있는 마을. 고려 고종이 피난 시 이곳에서 전좌하였다.
○정송강(鄭松江)집터
송정에 있던 송강 정철(鄭澈)이 살던 집터.
○포촌동(浦村洞)
송정 갯가에 있던 마을.
○한개
숭릉리 앞에 있던 큰 개.
○황수개
금굴과 임송골 사이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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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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