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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옥련동 청량산(淸凉山)

분류
연수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3230
연수구의 가운데에 우뚝 서서 송도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청량산(淸凉山)은 산세가 아름답고 좋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청룡산’’청릉산’’척량산’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조선 중종 때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그 뒤에 나온 『인천부지』 등에 보면 이 산에 대해 ‘깨끗하다(淸)’ ‘빼어나다(秀)’라는 말과 함께 청량산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일제 시대였던 1937년 일본인들이 한국을 오가는 관광객들을 위해 인천의 모습을 예쁜 색깔로 정밀하게 그려 만든 그림 지도 「경승(景勝)의 인천」에 청량산을 ‘송도 금강(金剛)’이라 이름 붙여놓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청량산이라는 산 이름을 처음 지은 사람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으로 전해 오며, 그가 고려 우왕 2년(1376)에 이곳에 흥륜사를 세우면서 이 이름도 지었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원래 청량산은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있어 오대산으로도 불리던 산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화엄종의 고승인 징관조사가 열반에 들며 “내 법(法)을 동쪽 해뜨는 작은 나라에서 꽃피우리라”고 예언했고, 이에 따라 그의 두 수제자가 백마를 타고 동쪽으로 계속 향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송도에 있는 이 산 중턱에 다다랐는데 더 이상 말이 움직이지 않아 이곳에 백마상(白馬像)을 세우고 산 이름을 청량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적 입장에서는 청량산이 원래 척량산(尺量山)인데 ‘청량’과 ‘척량’의 발음이 같아 와전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척량’이란 ‘금자로 땅을 재는 형국’, 즉 금척량지형(金尺量地形)의 준말로 이 산의 모양이 그런 형세라는 뜻이다. 산 이름을 청릉산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이 산의 동쪽 기슭에 청릉(靑陵)이라는 무덤이 있어 원래 산 이름이 청릉산이었다고 주장한다.
『대동지지』나 『인천부읍지』에 거론되고 있지만 지금 그 터를 찾을 수 없는 청릉은 백제를 세운 온조의 형 비류(沸流)의 무덤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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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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