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靑鶴洞)
청학동(靑鶴洞)은 구한말 인천부의 먼우금면에 속해 있던 곳이다. 청학동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이곳에는 청릉마을, 뒷골, 물푸레골, 안골, 옥터 등의 마을이 있었고 대부분이 바다에 맞닿아 있었다. 이들 동네는 문학산 뒤쪽에 있기 때문에 1903년 인천부가 동네 이름을 지을 때 한 데 합쳐 산후동(山後洞)이라 했다.
그뒤 이들 마을은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조정 때 일제에 의해 모두 합해져 청학리가 됐고, 당시 새로 생긴 부천군의 문학면에 편입됐다. 그 뒤 1940년 4월에 다시 인천부로 편입됐으며, 광복 뒤에 청학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청학동이 됐다.
여기서 청학은 일본인들이 청릉(靑陵)마을의 ‘청’자와 문학산의 ‘학’자를 따서 멋대로 붙인 이름이며, 선학동이나 문학동 등과 마찬가지로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하나로 저지른 일이다. 일설에는 ‘문학산 남서쪽에 위치한 푸른 숲 속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그 푸르름[靑]을 가리켜 청학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해석도 있지만 타당성이 적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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