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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문학동(文鶴洞)

분류
미추홀구(舊 남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남구 문학동(文鶴洞)은 바로 옆의 관교동과 함께 조선시대 인천도호부의 중심이 였던 마을이다. 구한말까지 성촌(城村), 남산(南山)마을 등으로 불리다가 1903년 서촌산성리(西村山城里)와 남산리(南山里)로 나뉘어지고, 이것이 산성리와 학산리(鶴山里)로 다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 뒤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 학산리와 문학리가 되고, 이들이 1940년 문학정이 됐다가 광복 뒤에 문학동이 됐다.
문학동이라는 이름은 이 동네의 뒤편에 있으며, 인천의 주산(主山)격이었던 문학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문학산은 조선 초기 지금의 시청격인 인천도호부 청사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산(南山)이라 했고, 조선 중기에 와서는 그 모양이 학이 날개를 펴고 앉은 것 같다고 해서 학산(鶴山)이라 불렸다 하는데 언제 문학산이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물론 학산이 산의 모양에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내용이며, 이보다는 ‘산’ 등을 뜻하는 우리말 ‘둠‘이 변형된 것으로 봄이 더 타당하다는 해석도 있다. 여하튼 이 산의 기슭에는 공자를 모시는 문묘(文廟)와 학교의 기능을 함께 한 향교(鄕校)가 남아있는데 이 때문에 학산이라는 이름에 ‘문(文)’자가 덧붙여진 들어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문학동은 구한말까지 산성말, 학산말, 남산말 등으로 불리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 때 문학리가 되는데 이 역시 산 이름을 그대로 따서 붙인 동네 이름으로, 그 뒤로는 다른 변화 없이 문학이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했다. 산성말은 문학산성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남산말과 학산말은 물론 산 이름을 그대로 붙인 마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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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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