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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주안동

분류
미추홀구(舊 남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3069
인천을 대표하는 땅 이름 가운데 하나인 주안(朱安)은 주안산(朱雁山)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요즘에는 없어져 쓰이지 않는 이름인 주안산은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 등의 기록으로 미루어 지금의 간석동 만월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글자 그대로 흙이 붉고[朱] 산의 모양이 기러기[雁]가 내려앉은 것 같아 주안산이라 불렸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동여지도』에 주안산(朱岸山)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쉽게 믿을 수 없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일부 국어학자들은 이를 산천에 제사 지내는 ‘밝’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옛날 도읍지나 중요한 행정 관서가 있는 곳에서는 주변의 산이나 바다에 국가나 마을의 평안과 풍년,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런 곳의 땅 이름에는 ‘한[大]밝’ 또는 그 변형인 ‘한밭’처럼 흔히 ‘밝’이라는 말이 들어갔는데 이는 곧 천신제(天神祭)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밝’은 그 뒤 한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발음 때문에 명(明;밝다), 주(朱)나 적(赤;붉다), 족(足;발) 등으로 파생됐는데, 주안산도 그 옛날 같은 기능을 했고, 또 똑같은 지명의 변천 과정을 거쳤다는 해석이다.
어느 쪽이든 주안은 원래 지금의 남동구 간석·구월·십정동 일대에 해당하며, 1898년 경인철도가 만들어질 때 당시의 간석리에는 말을 관리하던 주안역이 있었다. 그러나 철도가 생기니 이 역은 필요 없게 됐고, 그 대신 당시 충훈리(忠勳里)라 불리던 지금의 주안동에 새 역사가 생겨 그 이름이 주안역이라고 붙었다. 충훈리란 조선시대 바닷가였던 이곳에 정부 기구인 충훈부(忠勳府)의 방죽이 놓여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처럼 충훈리에 주안역이 생긴데 이어 1920년대 이곳에 생긴 염전까지도 주안 염전이라 불리면서 결국은 충훈리 일대가 주안이라는 이름을 빼앗아 오게 됐다. 주안은 그 뒤 일제에 의해 ‘주안(朱岸)’에서 지금과 같은 ‘주안(朱安)’으로 한자 표기가 바뀌게 되는데 그 이유는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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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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