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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이재관(李載寬 : 일제시대)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922
덕적(德積) 출신으로 성경학원(聖經學院) 학생인 이동응(李東應)이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휴학하고 향리로 내려올 때 ‘독립선언문’을 휴대하고 왔다. 이를 전달받은 이재관은 읽어본 후 임용우(林容雨), 차경창(車敬昌)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여 일본 경찰에 구금되어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치렀다. 광복 후 50년대 덕적면 의회 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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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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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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