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선(李興善 : 1877∼1975년)
이흥선은 본래 김포 태생이지만 유년 시절에 인천에 와서 성장했다. 당시 인천은 미두(米豆) 경기(景氣)가 번창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릴 때 일찍부터 일본인 미두거래소에 취직하여 근면 성실하게 10여 년 간 근무하였다. 퇴직하면서 퇴직금으로 받은 당시의 금액 1천 환으로 자본금을 삼아 1918년 유동(柳洞)에 인흥정미소(仁興精米所)를 차리고 1944년까지 경영하였으며, 1936년에는 석유와 곡물업을 겸한 인흥상사(仁興商事)를 경영해 인천의 10대 부호에 들게 되었다. 사회사업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는데, 1938년에는 최승우(崔承宇), 김세완(金世玩), 유군성(劉君星), 장석우(張錫佑) 등과 현재의 동산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인천상업전수학교를 설립했다. 동산학교 설립에도 관여한 연고로 1974년 동산학원 이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
공공누리
-
-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