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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회보

7월의 문화인물 이현보(李賢輔)의 생애와 업적

담당부서
자치지원과 (032-440-2430)
작성일
2003-09-29
조회수
1294
농암(農巖) 이현보(李賢輔 : 1467∼1555) : 조선전기의 문신, 강호문학의 선구자, <어부가>, <농암가> 등으로 영남지방의 시가문학을 창도함.
농암 이현보는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암가(農巖歌)」,「어부가(漁父歌)」같은 국문 시가를 창작하거나 개작하여 영남가단을 창시한 인물입니다.
농암은 연산군 - 중종 - 인종 - 명종 등 4대를 섬기면서 무려 44년(32세에서 76세까지) 간이나 벼슬아치로 역임하는 동안 향토에 기반을 둔 사대부 계층의 향촌 자치기능 강화에 역점을 두고 고을을 다스렸는데, 벼슬에서 은퇴한 뒤에는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처사적(處士的) 삶의 방식을 개발해 내는데 몰두하여, 후배인 이황이나 이황의 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강호 생활(江湖生活)의 풍류(風流)를 즐기는데는 읊기만 하는 한시보다도 노래로 부를 수 있는 국문 시가가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스스로 「효빈가(效嚬歌)」,「농암가」,「생일가」같은 단가(당시는 아직 시조창이 나오기 이전이므로 시조라는 명칭이 없었음)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83세 때 잊혀져 가던 「어부가」(12장)를 재발견하여 이를 개작하였는데, 이현보에 의하여 개작된「어부가」(9장)는 흔히 농암 「어부가」로 불리우며 조선 후기의 한국 문화(문학과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현보의 국문 시가 작품들이 영남의 후배들에게 국문 시가의 필요성을 일깨워 줌으로써 이황에 의하여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창작으로 계승되고, 다시 이황의 제자인 권호문(權好文)의 「독락팔곡(獨樂八曲)」과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 이숙량(李淑樑)의 「분천강호가(汾川江湖歌)」의 창작으로 이어져 내려가면서 국문학사에서 영남가단이라고
불리우는 국문 시가 창작의 전통으로 확립되어, 송순 - 정철 - 윤선도로 이어지는 호남가단과 함께 조선 후기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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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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