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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회보

『4월의 호국인물』 최종봉 공군 소령

담당부서
자치지원과 (032-440-2430)
작성일
2003-09-30
조회수
1068
전쟁기념관(館長 朴益淳)은 6·25전쟁 당시 필사의 방어작전으로 낙동강 최후 방어선 사수에 크게 기여한 故 최종봉(崔鍾奉) 공군 소령(1926. 11. 20 ∼ 1951. 4. 16)을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故 최종봉 소령은 1926년 경북 청도면에서 태어나, 1949년 조종 하사관으로 입대한 이후, 1949년 10월 공군 창군요원으로 참여했으며 1950년 4월 25일 소위로 임관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전투기가 전무(全無)했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연락기인 L-4기에 30파운드 폭탄과 수류탄을 싣고 출격하여 남하하는 북한 지상군을 공격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특히 아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필사의 방어작전을 수행할 때, 60여 차례의 정찰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우리 국군과 UN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고 반격을 준비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전쟁 발발 당시 전투기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한 우리 공군의 열악함을 감안할 때 연락기로 정찰임무와 함께 적 지상군에 대한 공격 임무를 수행한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1951년 4월 3일, 최종봉 소령은 F-51 전폭기로 기종전환 훈련을 마친 뒤 전선 후방보급로차단 작전에 출격하여 북한군의 군용건물, 보급품집적소, 통신장비 등을 무수히 파괴하는 전과를 세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출격한지 13일만인 1951년 4월 16일, 이천 북방에서 적군의 트럭을 공격하던 중 대공포에 기습공격을 당해 더 이상의 공격이 불가능하게 되자 애기(愛機)와 함께 적진에 돌격, 장렬히 산화했다. 정부는 최종봉 소령의 전공을 기려 을지무공훈장과 함께 소령특진을 추서했다.

4월 4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족과 공군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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