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金明辰)

표정보
기본사항 1902년 10월 9일생으로 본적지와 주소는 仁川府 內里(인천부 내리) 152번지이며, 출생지는 富川郡 大阜面 下洞(부천군 대부면 하동)으로 기록했음.  키는 약 159cm로 검거 당시 직업은 인천공립보통학교 3학년생임.
주요행적 1919년 7월 25일 치안유지법 위반, 住居侵入(주거침입) 電信法(전신법) 위반으로 경성 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같은 날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21년 4월 9일 만기 출소했음.
출소 후 본적지인 인천부 내리 152번지로 귀향했음.

기타사항

3.1운동 당시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 3학년 생으로 동맹휴교를 이끈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공훈전자사료관에서 김명진, 손창신, 이만용, 박철준의 판결문을 확인할 수 있음. 1919년 6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하고 구류기간 60일을 형량에 산입했는데, 같은 해 7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음.

경성복심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기각되었음. 


< 김명진 판결문의 이유 >


“제1. 피고 김명진은 인천공립보통학교 3년생으로서 대정 8년 3월 6일 이후 동교의 다른 생도와 함께 동맹 휴교를 하고 있던 바, 동교 직원과 소관경찰서 사이에 전화로 위 동맹휴교 중의 생도에게 대하여 그들의 행동을 조사하고 훈계를 하도록, 때로는 타합하고 있었다. 그 결과 가끔 엄중한 조치를 받게 되었음을 꺼려 그 통신을 방해하고자 하여 피고 이만용·박철준의 찬동을 구하여 3명이 공모한 후 동월 8일 오후 9시 경 피고 김명진·박철준은 인천부 우각리(牛角里)의 인천공립보통학교 내에 침입하여 피고 박철준은 망을 보고, 피고 김명진은 가지고 간 전선 절단용 가위(증 제1호)로 동교 2층에서 전화 공중선을 절단하고 이어서 아래 층 사무실에서 전화 수화기를 쳐 부숨으로써 동교의 전화로 하는 통신을 가로 막았음.

제2. 피고 김명진은 이튿날 9일 이 학교에 산책 나갔을 때, 마침 동교 변소 뒤에서 전 날 밤에 파괴 방치 유기한 수화기(증 제2호)를 발견하고 차지할 의사로 이를 주어서 피고의 집에 가지고 돌아와 제 멋대로 간직하여 둔 자이다.“

사진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