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동요, 우리의 소원 외

작성자
안 * * *



글쓴이 : 안정은 (제안자)

* * * * * * * * * * * * * * * * * * * * * * * * *

제안서 : 부랑인 시설의 확충과 요양원 설립 -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1997. 1. 27, 김영삼 정부)

제안자 - ( 당시 소속 및 직성명 )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총무과 (상황실장)
지방행정 주사(6급), 안정은
...............................................

남녀 노숙자 돕기 ( 2011. 11. 10, 이명박 대통령 )

보고자 : 안정은
부산시 금정구 중앙대로 19*5번길 3*-6,
10*동 1*0*호

* * * * * * * * * * * * * * * * * * * * * * * * * *

제 목 : ♬ 통일 기금 마련한다. 짝짝 !


이명박 정부 당시의 일이다.
제안자가 노숙자를 위해 은행에 기부금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수차례 독촉을 하니 엉뚱하게도 통일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글(광고 기사)가 나왔다.
그 시기가 박재완 제정기획부 장관 당시였을 것이다. ( 조선일보 하단에 광고로 크게 - 당시 ARS 전화번호는 없었다. ※ 그 이전 조선일보의 신문에
‘ 안중근 기념관’ 의 건립이 추진된다고 하여 제안자는 2008. 3월 27일자로 10만원을 보내었다. 당시 안중근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이 박유철 전 보훈처장이였다 )
하기야 국민들과 종교단체에서 당시 외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고, 후진국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우물을 파주고 했으니.........아인슈타인이 따로 없었다.
다음의 글(아래 줄친 부분 - 첨부 생략 )을 며칠 전 보건복지부에 올렸는데.........
이후 이번에도 통일기금(통일펀드)을 마련한다고 한다.
이름은 ‘ 통일과 나눔 재단’ 이며 이사장은 안병훈씨로 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이 ‘ 통일나눔펀드’ 의 후원자로 동참하기로 했다고 한다 ( 2015. 7. 11일 토요일, 조선일보, A2, 정녹용 기자 )
이희호 여사는 방북을 허가해 놓고 대기 중(中)인 상태이다.
그리고 주, 현대가(家)에서 추진해 온 금강산 관광(현정은 회장이 추진)도
‘ 볼거리보다 먹거리가 앞선다 ’ 고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 중국 고전 ‘ 대학’ 에서 나옴) 도 따로 없지 않은가 ? 짝짝 !

- (중간 줄임) -

이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여 ‘ 북한의 김일성을 만나겠다’ 고 하자
곧 북은 김일성 주석이 죽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과 통일을 하려면
남쪽과 북쪽이 경제적 차이가 많으면 안되므로 북한의 경제가 발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북에 개성공단이 들어섰으며 지금도 가동이 되고 있다.
한국은 우선 대외적으로
독립이 될 수 있는 힘(식품 안전 포함)을 가져야 외국과 교역(문물 및 문화)이 가능하다. 그 한예로써 식품에서 살펴보면, 한국인의 주식이 쌀인데 이웃 아열대 지역(대만, 태국, 베트남 등)의 나라에서 어찌했던 쌀값이 한국보다 싸다고 한국의 농민들은 쌀농사를 안짓고 아울러 국민들은 외국의 값싼 수입쌀을 사먹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식량안보와도 맞지 않다. 실제 한국인은 현명한 문화시민이라 그렇지가 않다.
한국인의 점심 분식(=밀가루 분식)은 세끼 밥식으로는 맛의 변화가 없어서 식단(메뉴)의 다양화로 필요한 것이다.
한 나라의 독립과 통일은 같은 선상에 있으며 한국인의 식품안전에서도 우선 독립 즉 우리의 식품으로 자급자족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식품에서 참기름은 중요한 양념인데 참깨가 들깨보다 수확량이 적는 탓인지 오래전부터 한국에서는 참깨 농사를 짓는 이가 적었고 농민들은 대신 과일, 외국산의 과일 등 특수작물의 재배가 늘면서 과일값이 떨어져서 농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농민들이 경작하기 힘든 작물은 수요량에 맞추어 재배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런 체제가 갖추어지지 않고 있다. 고구마와 참깨 등도 그 하나로 소비자가 왕인체제이다. 특히 참깨는 중국에서 수입하여 참기름을 짜왔으며 그러한 현실은 진행 중인데도 취임 1년 후 박근혜 대통령은 참깨의 주요 수입국인 중국 주석이 한국에 방문한 시기에 “ 중국과 한국의 꿈”을 운운하며 국민들이 당장 먹을 참기름 걱정도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정부의 수장이라 어려운 국민들을 살피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식품은 기초생활인 것이다. 생활수급자에 주는 중요한 정부 지원이 생계보호이다. 즉 굶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생활수급자는 남의 집이던 자가이던 집이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다. 그러나 노숙자는 집도 없는 국민인데 제안자가 상기 제안서를 제출하고 18년이 경과되었으나 건강한 노숙자에게는 교통비와 점심도 주지 않고 있고 부산에서는 이로써 곳곳에 점심을 주는 무료급식소가 운영이 되자 부산시(기관청)는 이들 노숙자들이 그곳(무료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도록 지하철 무료 탑승권은 주고 있는 듯하다.
생활이 어려운 북한 주민(한국의 노숙자 포함)에 대해 지원을 하면서 조건을 붙이지 말고 도와야 통일을 당길 수 있다. 이때까지 역대 정부에서 북을 그렇게 도와 왔는데도 박정부에서 심심하면 북한의 핵을 빌미 삼고 있다.
그리고 북한과의 통일이 한국정부에서 선택사항이 될 수 없다면
식품안전이 중지되다시피 한 현 정부에서
국민들을 중심으로 한 통일기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생각으로 보여진다. 제안자도 참여할 것이다.

첨 부 (생략) : 윤성민 국방장관과 아웅산 폭탄사고 ( 2015. 7. 10일, 보건복지부, 참여, 자유 게시판 등재)

-- 2015. 7. 12(일) --
.
등록 : 2015. 7. 12(일)
보건복지부 (장관 : 문형표), 참여, 자유 게시판 외
제안청, 부산시청 (시장 : 서병수), 참여, 자유 게시판
..........................................................

작성자 : 안정은 (제안자)

제 목 : 중국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중국 하얼빈驛(역)에
2014년 1월 19일, 안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들어섰다.
중국 하얼빈시와 하얼빈시 철도국은 이 공사를 그동안 비밀에 붙여진채
진행이 되었으며
이날 기념관의 개관식에는 헤이룽장성 부성장을 비롯한 중국측 인사들만
참석했다.
규모는 231㎡ (70평)으로 하얼빈역 귀빈실 내에 위치해 있으며 건물 내부에
안의사의 의거 현장을 조망할 수 잇도록 조성되었다.
그동안 간단한 표식만 있던 안의사의 저격 현장에 ‘ 안의사 이등박문 격살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6일’ 라는 설명 문구를 눈에 잘 띄게 걸어 놓았다.
기념관의 글은 한. 중 양국어로 전시되었으며 기념관에 걸린 벽시계는
안의사의 의거 시각인 오전 9시 30분에 고정되어 있다.

-- 조선일보, 2014. 1. 20일(월), 안용현, 김진명 기자 --
-- 국제신문, 2014. 1. 20일(월), 정유선 가자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통일부장관(통일부 홈페지, 역대장관) :
류우익 (2011. 9. 17 ∼ 2013. 3. 10), 류길재 (2013. 3. 11 ∼ 2015. 3. 12),
홍용표 ( 2015. 3. 13 ∼ 현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작성자 : 안정은 ( 제안자 )

주 제 : 식품 안전

제 목 : 동요, 우리의 소원 외


☆ 1

동요 하나를 옮겨 본다.

우리의 소원


♬ ♬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
李(?) 목숨 바쳐서 ‘ 독립’, ‘독립’ 이여 오 라 ~
李(?) 겨레 살리는 ‘독립’, 李(?)나라 찾는데 ‘독립’,
‘독립’ 이 어서 오라 ~ ‘ 독립’ 이여 오라 ~
♬ ♬
_____________________
상기 동요, ‘ 우리의 소원’ 의 노랫말은 해방 전에 불린 것인데
1950년 한국전쟁 후 남북 분단이 굳어지면서
노랫말의 ‘ 독립’ 이 ‘ 통일’ 로 바뀌어져 음악 교과서에 등재 되었다.
아래의 동요(우리의 소원은 통일)는 본인의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리어져 불렀던 노래이다.
...........................
‘ 우리의 소원’ 이란 동요는
작곡가 안병원씨가 부친 안석주씨의 노랫말에 곡을 부친 것이다.
안병원씨는 1926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거주해 왔다.
부친 안석주씨는 극작가, 소설 삽화가로 일해 왔다

-- 2015년 4. 8일, 국제신문 24면, 연합 뉴스 외 --
.
.
♬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 라 ~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찾는데 ‘통일’,
‘통일’이 어서 오라 ~ ‘통일’ 이여 오라 ~
♬ ♬
.
.
등록 : 2015. 4. 9일 / 4. 14일 / 4. 21일
부산시청 (시장 : 서병수), 시민참여, 자유 게시판 외

* * * * * * * * * * * * * * * * * * *

☆ 2

가곡, 바위 고개

바위 고개
- 이흥렬 작시 및 작곡, 이정희 노래 -


♬ ♬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

바위 고개 핀 꽃, 진달래 꽃은
우리 님이 즐겨 즐겨 꺽어 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고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고 피었네,
♬ ♬
______________________
* 이흥렬 작시 및 작곡............. 이흥렬 작곡가의 비교적 초기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귀에 익은 노래이다.
이흥렬 작곡가는 1909년 원산(현 북한)에서 태어나 일본 동경 음악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했으며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숙명여대에서 후진 양성에 정력을 기율였다.

-- 최영섭 해설, [한국 명가곡 선집], (예음사/서울), 1984년 45p∼46p --

※ 경원선 (京元線) : 서울과 원산을 잇는 철도로 1914년 개통하여 1945년 해방과 동시 북한과의 분단으로 단절된 철도이다. [ - 2015. 8. 6(목), 조선일보, 1면, 정시행, 최종석 기자 ]
부산에는 원산 냉면과 함흥 냉면이 알려져 있다.

* * * * * * * * * * * * * * * *

☆ 3

8. 15 노래
- * 윤인구 작사, 금수현 작곡 -

♬ ♬
( 1절 )
죽음의 쇠사슬 풀리고
자유의 종소리 울린 날,

삼천만 가슴엔 눈물이 샘솟고
삼천리 강산엔 새봄이 왔는 날
아 ! 아 ! 동무여 , 그 날을 잊으랴
우리의 생명을 약속한 그 날을
8. 15일 , 8. 15일
♬ ♬
_______________________
* 윤인구 .......... 국립 부산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냈다.
이 노래는 나오자 마자 부산과 경남의 모든 학교에 배포가 되었으며 부산방송국에서는 작곡가 금수현 선생을 초청해 노래 지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 ‘8. 15 ’ 노래는 4/4박자의 힘찬 행진곡풍으로 가사가 총 3절로 조국 광복의 기쁨과 생명의 충만함, 민족 영광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 제공 : 동래고등학교 역사관, 안대영 관장

-- 2015. 8. 11(화), 국제신문, 6면, 박창희 대기자 --

* * * * * * * * * * * * * * * *

☆ 4

21세기 민요, 백두산
- 장단 : 노래 가락 -

♬ ♬
백두산 때 구름 지고 , 두만강산(江山)에 질안개 끼니
비가 올지 눈이 올지, 바람 불고 된서리 칠지∼
님이 올지, 사랑이 올지,
가이(개의 방언)만 홀로 짓고 있네 ∼
♬ ♬

-- 2007년 하반기 남산동 주민자치센터, 국악교실 (강사 : 경기민요, 최연화) --

* * * * * * * * * * * * * * * *

☆ 4

제안 추진 내용 2008년 59 )

백두산을 찾아서


한국은 일본의 치하에서 해방이 되고 또 6.25 전쟁으로 남북이 분단이 되면서 이런 저런 목적으로 중국 만주로 떠났던 조선족들은 돌아오지 않고 황금의 만주벌판에서 한글을 사용하면서 동족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 그들은 백두산을 북한과 함께 공유하며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을 잘 닦아 놓고 우리들을 초청하였다.
중국 내 연변의 조선족들은 기초교육과정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또 조선족 자치주 안의 모든 간판에는 한자 위에 한글을 쓰도록 하고 있어 간판이 낯설지 않고 또 조선족들이 모국어를 쓰므로 이국에 온 느낌이 조금도 나지 않았다. 식사도 한식과 별 다름이 없다.
황금벌판에는 파종은 끝냈으나 계절이 이른지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무엇을 심었는지 알 수 없고 곳곳의 초록 구릉지에는 띄엄 띄엄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한국의 낮은 야산같은 구릉지에는 과일나무가 끝없이 심어져 있었는데 중국이 인구가 많은 대국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백두산 정상에는 6월인데도 잔설이 많이 남아 있었고 백두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였다.
두만강 물길을 따라 내려가니 강 건너 저쪽에 북한의 산들이 훤히 보였다. 나무를 심지 않은 산등성이에는 온통 밭으로 일구어 민둥산이 되어 있어 조선족 자치주의 푸른산들과 대조되어 매우 기이하게 느껴졌다. 두만강이 북한과의 경계선이므로 두만강에는 배도 노젓는 뱃사공도 없었다. 조선족 가이드는 마이크를 주며 흘러간 옛노래인 두만강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들어온 노래이지만 한번도 불러 본 적이 없는 노래였는데 두만강을 바라보며 마이크를 잡으니 가사를 기억할 수 있었다. 왼종일 떠들던 일행들도 한순간 숙연해졌다.
한국사람들의 중국여행에는 조선족의 젊은 가이드들이 맡았는데 한국과 왕래가 잦은 듯 하였다.
만일 그들에게 한국이 옆에 없었다면 지금까지 그들은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 땅을 지키고 우리들이 찾아오기를 오랜 세월을 두고서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그들이 왜 이때까지 그곳에서 머물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서 알고 왔다. 또 일부 우리 한국인들, 또 우리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연변에 도착하기 전, 중국의 북경(베이징)에서는 2008년 8월 개최되는 올림픽을 앞두고 한창 준비 중이었다.

-- 2008. 6. 3~6. 7, 중국 (북경, 연변 조선족 자치주, 백두산) --

.......................................................................

0. 통일 나눔, 참여 방법
- 재단 홈페이지 : www. tongilnanum.com
- ARS 기부 (통화당 : 3,000원 ) : 060 - 705 - 5151 번 (24시)

* 문의 전화 : 02, 739 - 7558 ~60

~~~~~~~~~~~~~~~
~~~~~~~~~~~~~~~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