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애국자
- 2019년 7월 18일(목) -
한국의 초등교, 중등교, 고교를 거쳐
통신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한국의 지방정부에서 공무원 29년 근무하다
퇴직을 하고서도
20년 동안 국민들의 먹을거리와 삶을 위해 일하는
나는 자칭 애국자
테이프에 담긴 우리 가곡이
아름다이 흘러나오는 국산의 테이프 라디오 1대가
고장이 났어도
아직은 밤낮 어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 심심하지 않고
나이 40대의 중반에
0.5톤 국산 화물 차량을 현금으로 사서
여지껏 나의 손발이 되어 있다
사오년 전에는 CD에 담긴 명음악이 듣고 싶어
수입산의 CD 라디오 한 개를 더 사고
커피를 잘 끓이지 않아서도 낡아진
커피포트는 버리고
수입산으로 다시 샀다
매일 쓰는 가계부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큰 수입산의 계산기가 옆에 있고
나이들어 바느질이 어려워도
사념의 시간들이 좋아
수입산의 바늘과 바늘귀를 사서
오늘 7월 장맛비를 뚫고 재래시장에 가서
식사시마다 식탁에 펼 광목천과
서향집에 어울리는 꽃무늬 밝고 고운
수입산의 식탁보천도 한감 떠 왔다
정유년의 해가 저물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종갓집 종손인 우리 가족은
565,117,525원의 상속세 폭탄을 맞았다
선조가 묻힌 선산, 과수원 3천평, 물논 8천평
대지 50평에 2층 주택 한 채
백세의 삶에서 한세대 33년으로 보아도
가족은 매년 상속세 1700만원 넘게
매월이면 140만원 넘게 내어야 하는
애국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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