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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1905년과 1906년의 그 당시 인천은?(1)

작성자
송 * *

1905년 1906년 그 당시 인천은?

9월은 가을을 여는 독서의 계절 시작 달이다 입추를 앞두고 있지만 가을의 여지는 어김없이 8월의 여운을 작열하는 태양을 그대로 담으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홑이불이라도 끌어당겨 덮게 되는 달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런 날을 맞이하여 모처럼 책을 들고 읽어내고 있으니 두가지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하나는 우리나라 철도개설의 효시인 인천 노량진간 철도 33.2km가 개통된 1899년 9월 18일이 9월에 있으며, 우리 집안 큰 어르신이었던 운인(雲人) 宋鴻(송홍) 선생의 탄신일이 바로 9월에 들어 있음도 의미라면 큰 의미다. 또 하나는 이 어르신의 책에서 바로 우리 고장 인천에 대한 언급한 내용이 있어서이다.
일찍이 운인 송홍 선생(1872.9.7.~1949.6.18.)은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독립운동을 일으키는데 민족주의자의 기치를 들고 당시에 광주학생운동의 본거지인 광주고등보통학교(현재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한문과 국어를 가르치며, 조선사(한국사)를 몰래 가르치는 등 우리나라 역사와 세계정세를 설파하여 배우는 학생들에게 민족적 정기를 바로 세우신 분이셨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들이 운인 송홍 선생의 제자들이었다. 운인 송홍 선생은 1930년 많은 제자가 광주학생운동으로 투옥되자 장기간 수업을 거부하면서 일제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항의하다가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공로로 2022년 3.1운동 103주년을 맞이하여 정부서훈에 추대되었다.
홀연히 선인의 유고를 읽으며 이 분이 바라본 우리 인천과의 인연이 담긴 한시 5편을 접하고 보니 그 인연의 자투리를 이어 아암도라는 섬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는 필자 또한 인천과의 인연이라 그 깊고 깊은 연결고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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