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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손돌의 추위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2338
강화도는 한강 입구에 있는 섬이다. 그러나 여느 섬과는 달리 육지와의 사이를 흐르는 물길(염하)이 빠르고, 또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해서 여간 숙련되지 않은 뱃사공은 이 물길을 함부로 건너지 못한다.
이러한 강화도의 자연 환경 때문에 고려∙조선 시대에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나라에서는 이곳을 피난처로 삼기도 했다.
인조 5년(1627), 후금(뒷날의 청)이라는 나라가 이 땅을 침략해왔다.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인조 임금은 서둘러 강화도 피난길에 나섰다. 아침 일찍 한양을 떠난 임금 일행이 오후가 되어 강화도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빠른 물살을 보며 걱정이 태산 같았다.
“저 빠른 물살을 어떻게 안전하게 건너가나?”
이때 임금의 일행을 구경하러 나와 있던 사람들이 손돌 사공을 추천했다.
“상감마마, 이 험한 물길을 가장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사람은 손돌 사공입니다.”
손돌은 임금과 그 일행을 맡아 강화도로 향했다. 소문대로 물살은 험했다. 급한 물살에 곧 뒤집힐 것 같은 배 때문에 임금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러나 손돌은 태연하게 노를 저어 점점 더 험한 물살의 가운데로 배를 몰아갔다.
순간적으로 임금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몇 년 전, 나라를 뒤흔든 난리가 생각난 것이다. 이괄(李适)이란 장수가 나라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며칠 후 이괄은 잡혀서 죽고 난리가 끝났다. 그때 일행 몇 명이 후금으로 도망을 갔다. 임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뱃사공이 이괄과 한 패가 되어 나를 죽이기 위해 배를 이곳으로 모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임금은 더욱 불안해졌다. 임금은 소리쳤다.
“여봐라, 저 사공이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어서 저 놈의 목을 쳐라.”
“상감마마, 아니옵니다. 이 물길로 가는 것만이 제일 안전한 방법입니다. 하늘에 맹세코 마마를 안전하게 강화도까지 모시겠습니다.”
“저 놈이 계속 나를 속이는구나. 어서 저 놈의 목을 쳐라.”
손돌 사공은 자신이 살아 남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감마마, 마마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부탁 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물길은 너무 위험합니다. 그러니 제가 띄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배를 몰아 주십시요. 그러면 안전하게 강화도에 도착할 것입니다.”
손돌은 곧 죽임을 당했고 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을 따라 안전하게 강화도에 도착했다. 임금이 강화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사방에서 큰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물길은 더욱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염하 물길을 바라보던 임금이 천천히 말했다.
“으~음, 내가 손돌을 의심하였구나. 나의 잘못이다. 여봐라, 손돌의 시신을 잘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지내도록 하라.”
지금 강화도의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의 덕포진(대곶면 신안리)에 손돌의 무덤이 있다.
사람들은 이 물길을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는 큰바람이 분다고 한다. 이를 손돌의 한숨, 손돌바람, 손돌추위라 한다.

원혼의 바람이 들어 / 이 바다에 떠돌면서 / 해마다 그 날이 오면 /
분하여 운다 하네 / 그 왕도 간 지 오래되니 / 잊어 버리고 말려무나 /
손돌이 어진 사공 / 제 죽음 한함이랴 / 고국 정한을 못 풀어 우는 게
다 / 일년도 삼백육십 일 / 다 불어도 남겠구나.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손돌 사공을 죽인 임금을『강도(江都)의 민담과 전설』에서는 조선의 인조임금으로,『 김포군지』에서는고려고종으로, 그리고『여지도서』에서는 고려 공민왕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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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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