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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풍년을 기원하는 밥 한술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1940
덕적도에는 들에 나가서 밥 먹기 전에 밥을 한 술 떠서 버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 풍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이 섬에 고씨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마음씨도 착하고 일도 열심히 하여 동네 사람들은 그 여인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인이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위쪽에서 오이가 떠내려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배가 고팠던 터라 그 여인은 얼른 오이를 건져 먹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여인이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 여인은 당황하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달이 지날수록 배는 불러만 갔다. 마을 사람들은 기이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녀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한 것이 아닌가하고 그녀를 의심했다.
어느덧 만삭이 되어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이 관가에 가서 신고를 하니 아비 없는 자식인데, 오이를 먹고 낳았으니 성씨를 오이‘과(瓜)’자를 써서 과가라 하고 이름을 도선(道仙)이라 지어 주었다. 도선이 나이가 들면서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놀림이 괴로웠다. 어머니는 도선을 먼 중국으로 보낼 결심을 했다. 도선은 어머니의 심정을 알고 열심히 공부하여 돌아와 편히 모실 것을 다짐하며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으로 떠난 도선은 워낙 머리가 영특한 데다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글방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도선이의 모습이 이상했다. 얼굴이 누렇게 뜨고 기운이 없이 맥을 못 추는 것이었다. 서당의 훈장 어른이 그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으나 공부를 많이 하여 그렇거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훈장 어른이 도선이를 보고 말했다.
“이 녀석아! 요즘 왜 그리 몸이 수척한 게냐? 무슨 일이 있는게냐?”
도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했다.
“글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려면 고개 마루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고개 마루턱에 어떤 여자가 매일 기다리며 자기 집에 들어가 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 함께 노는데 그 여자가 조그마한 구슬을 무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구슬을 저의 입에 넣어 주고, 다시 구슬이 저의 입에서 여자의 입으로 들어가고 하면서 몇 번을 반복합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도선의 말에 훈장이 무릎을 쳤다.
“그게 여우로구나. 그리고 그 구슬은 바로 여우의 여의주다. 그러니 만일 오늘밤에도 또 그 여우를 만나거든 그 구슬을 삼켜라. 그러면 그 여우가 너에게 그 구슬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때 너는 빨리 도망치도록 해라.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면 천문지리(天文地理)에 통달할 것이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우가 도선이를 데리고 여느 때처럼 집으로 들어갔다. 구슬을 물게 되자 도선은 훈장의 말대로 구슬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는 황급히 도망쳤다. 여우가 구슬을 달라며 쫓아 나왔다. 급히 도망을 친 도선은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내려다보고 천문지리를 다 통달하게 되었다. 도선은 이제 고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도선은 압록강을 건너오면서 자손 중에 임금이 날 명당 자리에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를 모셨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길을 재촉하던 그는 산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상복을 입고 나무를 하고 있었는데 도선이 그에게 물었다. 
“누구 상을 입었습니까?”
그러나 그 상복 입은 젊은이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도선은 한마디 더 했다.
“아버지 상입니까? 어머니 상입니까?”
여전히 대답이 없자 한 번 더 물었다.
“어떻게 장례라도 치렀습니까?
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도선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장례는 못 치렀습니다.”
도선은 자기의 예상이 맞았구나 하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오다가 좋은 자리를 봐 둔 곳이 있는데 그곳에다 모시지요.”
도선이 말을 끝나기 전에 상복을 입은 사람이 다시 말했다.
“그 정도 자리에다 모시려면 벌써 모셨지요.”
은근히 약이 오른 도선은 어머니를 위해 보아 둔 명당 자리에 가서 이곳은 어떠냐고 묻자, 그 상주는 펄쩍 뛰면서 소리쳤다.
“아니 여기는 천장지비(天葬地秘)라서 산신령님이 임자를 기다리고 있거늘 감히 당신이 점령하려 하오?”
도선은 분수에 넘친 자리를 탐낸 것을 반성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어머니의 시신을 들판에 모셨다.
그런데 그 후 삼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계속 되었다. 농부들은 흉년이 계속 되자, 하늘에 기우제를 드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농부의 꿈에 도선의 어머니가 나타나,
“저를 위해 들에 나와서 밥을 먹을 때 그 밥을 한 술씩만 뿌려 주면 비가 올 것입니다.”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새참을 먹을 때마다 밥 한 술씩 떠서 뿌리며 ‘퇴, 고씨네’했다. 고씨네란 도선의 어머니를 부르는 것으로 날씨가 순조로워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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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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