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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강화읍 신문리(新門里)

분류
강화군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069
○구촌동
남문안 서쪽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남관제묘
신문리 532번지에 있는 관우의 사당으로 고종 21년(1884) 판관 오상준(吳相準)이 세웠다.
○남문(南門)
안파루(晏波樓)라는 현판이 달린 남산리와 신문리의 경계에 있는 강화읍성의 남쪽문으로 문루(門樓)가 있다.
○남산(南山)
강화읍 중심가에서 남쪽에 있는 산. 고려 고종이 천도하여 화산(花山)이라 칭하였으며, 산정에는 고려시대에 남장대(南將臺)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산봉수가 있어 동쪽으로는 통진, 서쪽으로는 봉천산 봉수에 응하였다.
○냇다리
용흥교 동쪽 동래깃내에 있는 다리.
○뉘머리
누에머리의 준말. 뒷 남산골 동북쪽 언덕에 있는 마을로 누에머리처럼 생겼다하여 잠두(蠶頭)라고도 한다.
○댕댕이
대흥정이 있던 남문안 동남쪽 산 기슭에 있는 마을로 대흥, 대흥부락, 대흥동으로도 부른다.
○동락교
댕댕이 서쪽 동래깃내에 있는 다리.
○솔터우물
솔텃물, 장터우물이라고도 부르는 아래시장 동쪽에 있는 우물로 활터가 있었다. 진전(眞殿)의 제사 때 이 물을 썼다.
○용흥교
냇다리 서편 동락천에 있던 다리. 부령(副領) 윤철규(尹哲圭)가 나무로 다리를 놓아 판교(板橋)라 부르다가, 1918년 최우현(崔佑賢)이 사재를 들여 4칸의 돌다리로 고쳤다. 아래, 윗시장을 오가는 데 편리하므로 장(場)다리라 했고 그의 기념비를 세웠다. 그뒤 시멘트로 다시 놓고 관청리의 용흥궁으로 통하는 길목이 되므로 용흥교로 부르게 되었다.
○쪽우물
남산 동북록(東北麓)에 있는 샘.
○천하골약수
신문리 산 14번지에 있는 약수터로 강화도령(철종)이 관청리에 살 때 늘 이물을 마셨다고 전한다. 지금은 새로 개발하여 청하동약수 또는 남산약수라고 부르며, 물맛이 좋고 시원하여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화산암(火山庵) 터
대흥정터 동쪽 남산 기슭에 있는 절터로 폐사된 뒤에는 화약고(火藥庫)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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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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