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 제물포(濟物浦)
인천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곧잘 쓰이는 제물포(濟物浦)는 원래 지금의 중구 중앙동, 항동일대에 있던 작은 포구였다. ‘제물’이라는 말은 조선 초기부터 이곳에 있었던 수군 기지 제물량에서 비롯됐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제물량은 인천군 서쪽 15리에 있다. 성창포(城倉浦)에 수군 만호(萬戶)가 있어 수어(守禦)한다’고 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도 ‘제물량영(濟物梁營)은 인천부 서쪽 19리 되는 곳에 있고 수군 만호 1인이 있다’라는 기록이 나와 있다. 이는 한양에서 가까운 해안의 수비를 위해 이곳에 설치한 군사기지를 말한 것인데,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봐도 인천항의 옛 이름은 성창포였고, 제물포는 그 안에 있는 작은 나루터였음을 알 수 있다.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제물’을 ‘제수(濟水)’ 곧 ‘물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인천 앞바다의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워낙 커서, 물때에 맞춰 배를 대지 않으면 갯벌에 배가 얹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이곳이 포구이니 만큼 제물은 ‘물을 건넌다’는 뜻의 ‘건물’에서 비롯된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건널 제(濟)’자는 ‘건넌다’는 우리말의 뜻을 따서 쓴 한자이고, ‘만물 물(物)’자는 바닷물의 ‘물’을 소리만 따서 한자로 옮긴 것이다.
또한 제물포의 ‘포(浦)’는 ‘물이 들어오는 곳’을 뜻하는 우리말 ‘개’를 한자로 옮긴 것이니, 결국 제물포는 ‘건물개’라 불리던 곳이었고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한자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제물포는 원래 지금의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넓게는 중구와 동구 지역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1963년 1월 당시의 경인전철 숭의역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물포역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은 그 역사가 있는 남구 도화동 일대가 마치 제물포인 것처럼 변해 버리고 말았다. 철도청에서도 당시 왜 숭의역을 제물포역이라 이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못하고 있다.
어쨌든 이 때문에 원래 제물포와 인천도호부의 위치를 따져볼 때 지금의 경인전철 인천역이 제물포역이 되고, 오히려 제물포역이 인천역이 돼야 타당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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