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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연수동 원인재

분류
연수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3257
인천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생긴 원인재(源仁齋)역은 역사 바로 옆에 인천 이씨의 중시조(中始祖)인 이허겸(李許謙)의 재실(齋室) 원인재가 있어 그 이름을 갖게 됐다. 재실이란 묘소에 딸려 있는 전각이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또는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집을 일컫는데, 원인재 옆에는 실제로 이허겸의 묘소가 있어 이곳에서 제사를 준비한다.
지금의 원인재는 원래 있던 것을 인천시가 도시계획을 빌미로 철거해 버림에 따라 ‘인천 이씨 대종회’에서 5년여 간의 공사를 벌인 끝에 지난 1999년 10월에 새로 지은 것이다. 원인제의 ‘원인’이란 ‘인주(仁州) 이씨(李氏), 곧 인천 이씨의 근원(源)’이라는 뜻으로, 인천 이씨의 여러 분파가 이허겸 대 이후에 나뉘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인천시사편찬위원장을 지낸 고 박광성(朴廣成) 교수는 지금의 새 건물이 지어지기 이전의 원인재가 순조 7년(1807년)이나 고종 4년(1857), 아니면 1927년 을묘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인주 이씨 종친회에 따르면, 이허겸의 선조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둘째 아들이었다 하며 어머니의 성을 따서 대대로 허(許)씨 성을 썼다고 한다. 그러다 신라 말기에 이 집안 사람중 하나가 ‘안록산의 난’이 일어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의 황제 현종에게 잘 보여 황제의 성인 이씨 성을 받았고, 그 뒤 자손들이 8∼9세기쯤에 소성현(邵城縣;지금의 인천)으로 이사와 터를 잡았다. 이허겸의 집안은 이같은 조상들을 자랑스럽게 여겨 이(李)씨와 허(許)씨를 함께 성으로 쓰고 이름을 겸(謙)처럼 한 글자로 짓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고려 인종 때 이지저(李之?)가 지은 ‘이공수묘지명(李公壽墓誌銘)’의 기록에 따라 이 집안의 선조를 이허겸대보다 100여 년쯤 앞선 시대에 황해도 신천(信川)에 살다 인천으로 이주한 기평(奇平)이라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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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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