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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옥련동 능허대(凌虛臺)

분류
연수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737
옥련동에 있는 능허대(凌虛臺)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사신들이 중국을 오가던 나루터의 출발점 같은 곳이다. 원래 이곳의 나루터는 배를 대고 타는 백사장에 있었고 그곳을 우리말로 ‘한나루’, 한자로는 대진(大津) 또는 한진(漢津)이라 불렀다.
서기 372년 백제 근초고왕 때 시작해 그 뒤 100여 년 동안 이곳 나루터에서 백제의 사신들이 중국을 오갔으며 조선 광해군 때까지도 나루터로 이용되었다.
인천시는 이 같은 역사를 기념해 지난 1988년 이곳을 자그마한 공원으로 만들고 정자도 세웠다. ‘능허대 터’라는 표석(標石)과 함께 ‘중국 사신의 배를 대던 곳’이라는 내용도 붙였다.
하지만 향토사학자들 사이에는 옛 문헌을 볼 때 능허대가 배를 대던 곳이 아니며, 이곳에 누각이 있지도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대진에서 백제 사신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중국의) 등주(登州)와 래주(萊州)에 닿았다”고 나와 있고, 능허대에 대해서는 “청량산 옆 해변에 백여 척 높이로 솟아 30명이 앉을 수 있는 그 위에서 바다가 멀리 보인다”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또 “백제의 사신을 따라온 애첩(愛妾)이 님을 보낸 뒤 이곳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로 미뤄볼 때도 능허대는 높다란 바위였음이 분명한데 이곳의 절벽은 그다지 높지 않아 기록이나 전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능허’라는 말은 중국 송나라 때 시인인 소동파(蘇東坡)의 대표작 ‘적벽부(赤壁賦)’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곧 ‘만경창파(萬頃蒼波)를 건넌다’는 뜻의 ‘능만경지망연(凌萬頃之茫然)’에서 ‘능(凌)’을 따고, ‘하늘을 타고 바람을 몬다’는 뜻의 ‘빙허어풍(憑虛御風)’에서 ‘허(虛)’를 따 이 이름을 만든 듯하다.
이렇게 보면 ‘능허‘는 ‘하늘을 타고 바람을 몰 듯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 돼 사신이 배를 타고 떠나던 곳이 되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소동파가 살던 시절은 우리 나라 고려 시대에 해당하니 결국 ‘능허대’라는 이름은 백제 시대에 쓰이던 것이 아니라 후세에 누군가가 옛일을 회상하며 붙인 것이라 하겠다.
한편에서는 지금 송도유원지가 된 저수지 안에 암반(岩盤)이 있는데 이것을 큰 능허대라고 하고, 지금 공원이 서있는 곳을 작은 능허대라 불렀다는 해석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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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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