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동 만의골
장수동에 만의리(晩宜里) 또는 만의골이라 불리는 동네가 있다. 인천대공원의 끝자락 깊은 골에 위치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군부대가 터를 잡고 있다. 1871년 발행된 『인천부읍지』나 이에 앞서 나온 『경기지』에 보면 조동면에 수월리(水越里)와 만의리가 나온다. 또 1910년경 나온 『조선지지자료』에는 만의동(晩宜洞)이 ‘만의굴’로 기록되어 있다. 일부 향토 사학자들은 여기서의 ‘만의’가 ‘만호(萬戶)’에서 발음이 바뀐 것으로 해석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곳에 무관(武官) 직급 가운데 하나인 만호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또는 이곳에 주민 1만 가구(호)가 살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만호가 있었다는 말은 너무 막연한 이야기이고, 이 좁은 골짜기에 그 옛날 1만 가구나 되는 사람들이 살았다는 얘기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국어학자들 가운데는 만의골을 우리말 ‘느직골’이 한자로 바뀐 이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느직’은 ‘느직하다’는 말의 뿌리가 되는 것으로, 정해진 때보다 조금 늦다거나 조금 느슨하다, 또는 여유가 넉넉하다는 정도의 뜻이다. 이 마을이 관모산 등 주변 산의 안쪽 깊은 곳에 들어앉아 있기 때문에 ‘느직한 골짜기’ 또는 ‘느직한 동네’라는 뜻에서 부르던 이름 ‘느직골’이 한자로 바뀔 때 ‘느직하다’는 뜻을 ‘늦을 만(晩)’자로 받았다고 보는 해석이다. 이때 ‘마땅할 의(宜)’자는 별다른 뜻은 없이, 단지 발음의 편의를 위해 들어간 글자일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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