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동 장자골
남동구 장수동(長壽洞)에 장자골이라는 동네가 있다. 지금은 이곳이 장수동의 일부가 되어 있지만 구한말까지만 해도 장수동 일대는 인천부(仁川府) 조동면(鳥洞面) 장자리였고, 장자리는 장자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수동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장자골과 인근 수현리(水峴里:무너미)를 합하고 각각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이름일 뿐이다. 장자골은 흔히 ‘장자(壯者)’골이라는 한자로 표현되며, 이는 이 동네에 살았다는 여덟 명의 장사 전설과 이어진다. 옛날 이곳에는 부자들이 많이 살았는데 임진왜란 이후 나라 살림이 피폐해지자 곳곳에 도둑이 들끓어 이곳도 그들이 노리는 동네가 됐다. 어느 날 이 동네 주막에 수상한 장정들이 찾아와 술을 먹고도 돌아가지 않기에, 이를 수상히 여긴 주모가 남편을 시켜 동네 청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동네의 여덟 장사는 함께 모여 기다렸다가 한 밤이 돼 이들이 동네 부잣집들을 돌아다니며 노략질을 시작하자 모두 붙잡아 포도청에 넘겼고, 그 뒤로 이 마을에는 다른 도둑들도 얼씬거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곳 말고도 우리 나라 곳곳에는 장자골이라는 이름이 적지 않은데 여기에는 이같은 장사의 이야기가 아니면 ‘부자(富者)가 살았던 곳’이라거나 ‘정자나무가 있던 곳인데 그 나무가 없어져 유래를 모르게 되자 정자가 장자로 바뀐 곳’이라는 식의 설명이 따라다니곤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그 이름에 따라 재미 삼아 후대에 지어낸 내용으로 보이며 별다른 근거는 없다. 장자골은 이보다 ‘작다’는 뜻의 우리말 ‘잔’에 성(城) 또는 고개를 뜻하는 ‘자’, 여기에 마을을 뜻하는 ‘골’이 합해 생긴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자’는 원래 중세어 ‘잣’에서 바뀐 것으로 뿌리가 같은 변형 ‘재’와 함께 땅이름에 흔히 쓰였고, ‘장’은 ‘잔’의 발음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장자골은 결국 ‘작은 고개 마을’ 정도의 뜻이 되는데, 실제로 이 동네 주변에는 용등산을 비롯해 그다지 높지 않은 산들이 여럿 있으니 여덟 장사의 이야기보다는 훨씬 더 이치에 맞는다 하지 않을 수 없다.
-
공공누리
-
-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