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지명유래

학익동(鶴翼洞)

분류
미추홀구(舊 남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3721
학익동(鶴翼洞)은 문학산의 한 줄기인 학익산 아래 동네다. 연경산(衍慶山)이라고도 불리는 학익산은 멀리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문학산은 이전 이름이 학산(鶴山)이었는데, 학익산과 문학산 주봉(主峰)이 두 날개처럼 펼쳐져 동네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라 하며, 그래서 동네 이름도 학골, 핵굴 등으로 불렸다 한다.
하지만 이 산이나 동네가 정말 그 같은 모양과 형세를 갖고 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한편에서는 이곳이 옛날 바다에서 가까워 조개가 많이 났고, 이 때문에 합골로 불리다 발음이 변해 햇골 또는 핵굴로 불린 것이 학산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해석은 이 일대 바다가 매립된 것이 1894년 청일전쟁 이후이고, 주변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오래 전부터 바다에 의지해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과는 전혀 다르게 학익의 ‘학’은 산의 모양에서가 아니라, 우리말 ‘둠’ 또는 ‘두름’에서 왔을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는데 이는 꽤 논리성을 갖는다. ‘둠’ 또는 ‘두름’은 ‘주변을 빙 둘러싸다’는 ‘두르다’의 옛말 ‘두루다’의 명사형으로 산 같은 것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인 말이다. 그런데 ‘두름’이 날아다니는 새 ‘두루미’와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사람들이 산 이름을 ‘두루미산’이라 잘못 생각하고 한자로 ‘학산(鶴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학의) 날개와 같다’는 살까지 붙었고, 그것이 결국은 ‘학익산’과 ‘학익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이 어느 쪽이든 이 동네는 1903년 학익리가 됐다가 1946년 학익동이 돼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학익동은 조선 숙종 무렵 이곳에 자리를 잡은 부평 이씨 문중에 제운(霽雲)선생이라는 덕망 높은 학자가 있어 ‘제운리’라 불리기도 했었다.

도천단(길)
학익동에 도천단길(禱天檀길)이라는 도로가 있다. 비룡삼거리에서 학익사거리를 거쳐 미추홀길과 연결되는 길인데, 지난 2000년 인천시가 시내 주요 도로 여러 곳의 이름을 새로 지을 때 생긴 이름이다.
도천단길은 이 길이 지나고 있는 인근, 학익동에서 문학동으로 넘어 들어가는 야트막한 고개를 옛날에 ‘도천이 고개’나 ‘도천현(禱天峴)’ 또는 ‘대천이 고개’ ‘도차니 고개’ 등으로 불렀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은 주변이 모두 개발되어 옛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옛날 이 고개의 서쪽 아래에 글자 그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인 ‘도천단’이 있었다고 한다.
도천단이 있다 보니 고개 이름도 도천고개니 도천이고개니 하고 불렸다는 것인데, 이런 부류의 전설들이 흔히 그렇듯 언제 그것이 있었고, 또 언제 없어졌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이 그저 그랬다는 이야기만 전해온다. 도천이 고개에 대해 이밖에 다른 해석이 전혀 전해오지 않는 것으로 보면 ‘대천이’는 그저 ‘도천(이)’의 발음이 바뀌어 생긴 이름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