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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동춘동(東春洞)

분류
연수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782
동춘동(東春洞)은 구한말 인천부 시절 먼우금면 자앞마을과 동막(東幕)마을 등 작은 농어촌 마을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있는 자앞마을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자[尺]의 앞마을’이라는 뜻으로 푸는 것이며, 이는 풍수지리설과 관련돼 있다. 이에 따르면 동춘동 뒤쪽에 서있는 청량산(淸凉山)은 원래 척량산(尺量山)인데 ‘청량’과 ‘척량’의 발음이 같아 잘못 바뀐 것으로 본다. ‘척량’은 풍수지리설에서 ‘금자로 땅을 재는 형국’을 나타내는 말, 즉 금척량지형(金尺量地形)의 준말로 청량산의 형세가 그렇다는 이야기이며, 그 자의 앞에 있는 동네라 해서 자앞마을이 됐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에 따라 자앞마을은 1903년 동네이름이 한자로 바뀔 때 척전리(尺前里)가 됐는데, 이곳에서 대대로 뿌리 박고 살아온 영일(迎日) 정씨(鄭氏)들이 청량산을 명당으로 쓰며 그 정기를 받았기에 크게 번성했다고도 한다.
또 다른 해석은 ‘자’앞의 ‘자’를 ‘성(城)’을 뜻하는 우리말 ‘잣‘의 변형으로 본다. 실제로 우리말에서 ‘잣‘은 ‘자’나 ‘재’등으로 변화해 쓰인 경우가 무척 많은데, 이도 같은 경우로 보아 ‘성앞 마을’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미 비류(沸流) 백제의 전설부터 이어져 온 문학산성과 문학산, 그리고 그 일대 지역이 예로부터 인천의 중심지였으니 이곳은 그 성 앞에 있는 마을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동막’은 옛날 이 마을 동쪽에 군부대 막사(幕舍)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동쪽이 막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는 해석도 있다. 동막은 1903년 척전리가 생길 때 동막리가 됐고, 이 둘은 1914년 부천군이 생길 때 한데 합쳐져 동춘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으며, 이것이 광복 뒤인 1946년 동춘동이 됐다.
이와는 달리 동춘은 원래 ‘동쪽 마을’이라는 뜻의 동촌(東村)이었다가 발음이 바뀌어 생긴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실제 이곳에는 옛날 동쪽말(마을)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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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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