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동 신용동(新龍洞)
1940년 이후 윗마을이 로터리로 들어감에 따라 로터리에서 부평극장(또는 부평시장)이 있는 곳까지 환지를 받아 도시계획에 따른 신시가지를 조성하여 나가 살았다.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도 이곳이 가장 번화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동인천 앞에 용동(龍洞)이 있듯이 부평의 새로운 용동이라 해서 신용동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잘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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