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동 고니새말, 고니시말, 신복동(新福洞)
1930년대만 해도 부평에 인가라고는 원마을인 하촌에 약 30여호, 부평역전(윗마을)에 10여호, 수도사거리에 5∼6호, 그리고 신트리에 서너 집뿐이었다. 그리고 부평역과 수도사거리 동쪽 벌판은 밭으로는 배수가 잘 안 되는 진 펄이고, 논으로는 수원이 없어 하늘만 쳐다보는 땅이었는데 일본인 고니시[小西]라는 사람이 이곳에 농장을 만들기 위하여 땅을 사고, 지금의 천주교 성당이 있는 근처에 직경 50m가 넘는 큰 저수지를 파고 그 옆에 살았다. 그후 이곳에 고니시와 더불어 대여섯 집이 모여 살게 되니 고니시말[小西村]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고니새말은 고니시말이 나중에 변한 것이다. 그런데 6·25전쟁 후 이 마을의 유지 최규헌, 원유본, 유상목 등이 고니새말이란 이름이 못마땅하여 새로운 이름을 짓기로 하고 숙의한 끝에 ‘새로 복을 받는 마을’이란 뜻으로 신복동이라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부른 이름을 고쳐 부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
공공누리
-
-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