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 징맹이고개[景明峴]
이 고개는 고려 때 고을 이름을 따서 ‘수주고개[樹州峴]’라 이름하였는데, 원(元) 간섭기 충렬왕(忠烈王)이 매사냥을 즐겨 국영 응방(鷹坊)을 이곳에 설치하고 재위시 다섯 차례나 이곳에 들러 좋은 매를 징발한 것에 유래하여 ‘징매이고개[徵鷹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변음되어 ‘징맹이고개’가 되었고 한자로 표기하면서 다시 ‘경명이고개[景明峴]’로 변음되었다고 한다. 한편 ‘경맹이고개’라고도 하는데, 이는 충렬왕이 매사냥을 즐길 때 매를 경쟁시켜 산짐승을 잡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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