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 장사굴, 장사골
계양산 정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계양산 주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산 중턱에 조그만 석굴이 있었는데 입구는 비좁아 작은 사람이 엎드려 기어 들어가면 그 안은 조금 넓어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굴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장사굴이라 불렀고 이 굴이 있는 골짜기를 장사골이라 부른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 부평에 쳐들어 오자 부평향교의 유생 박무영, 박대충, 이언복 세 사람은 대성전의 열성위 위패를 짊어지고 계양산 암굴에 숨겼다가 난리가 끝난 뒤 다시 향교에 모셨다. 불에 탄 인근 읍의 향교들은 이를 와서 본떠다 새로 만들었다 하며, 선조는 이를 가상히 여겨 참봉 벼슬을 내렸다 한다. 그 때 그 위판을 감추었다는 계양산 암굴이 바로 장사굴이다. 지금은 무수히 깨어진 돌조각만 즐비하게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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